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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고구려 역사 편입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에서 고구려 역사서 및 논문을 앞에 중국 고구려 연구... 등등으로 붙여서 나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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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3LegsCrow::하늘날다 두루물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1. 8. 19. 18:39

지도로보는 통일한국 패권 Damul Korea2011. 8. 19. 18:39

지도로 보는 미국의 패권구상 - 통일한국과 2012년 대격변

다시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어 올려드리오니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지도로 보는 미국의 패권구상 - 동북아시아의 새로운강자 통일한국

출처:디씨역사갤러리 (2007년제작)

아직 못보신분이 계실까 하여 다시 올립니다.

그림1

이하 디씨역갤인용시작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들어서고, 네오콘의 세계전략이 구체화되었을때에

왜 그 첫번째 침공대상이 아프가니스탄이었는가?

그림2

그것이 이라크라던지 또는 북한일 가능성은 없었을까?

이런 생각한번쯤 해보셨을겁니다.

그림3

작금의 동북아시아정세 (미-중간의 대립)을 보면서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벌여오고있는 패권구상을 지도로 확인해볼수가있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말보다는 지도한장이

더 쉽게 부시행정부의 패권전략을 이해하게도 해줍니다.

아래 그림이 좀 불친절하긴해도, 원으로 되어있는 부분을 보면서 설명을 드리죠.

가운데에 있는 큰원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입니다.

보라색으로 되어있는 부분이죠.

1.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을 첫번째 목표로 삼았나?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위치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보신분들은 많지 않을겁니다.

그런데 잘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는것을 발견하게됩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란과 중국을 곧바로 연결하는 중앙에 위치하고있습니다.

그림4

또 다르게 말한다면 중동과 중국을 직접연결하는 연결통로이기도 하지요.

중국이 중동으로부터 원유공급파이프라인을 계획했던 주요루트가

바로 아프가니스탄을 경유하는것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지도를 조금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오른쪽으로 길죽하게된 지형이 바로 중국으로 연결할수있는 통로지요.

그림5

아울러 아프가니스탄의 다음으로 미국의 침공을 받은곳은 이라크입니다.

이라크를 살펴보면 더 재미있어집니다.

바로 이라크는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이란과 접경한 국가이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미국이 점령하게되면

이란은 그 사이에 샌드위치가 됩니다.

그림4지도의 오른편에 있는 두개의 원은

말할필요도없이 한반도와 대만입니다.

네개의 원의 공통점은 미군이 직접적으로 힘을 투사하고있는 곳입니다.

한반도와 대만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을 연결하는 삼각구도는

중국을 둘러싸게됩니다.

마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의해서 샌드위치가된 이란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중국과 이란을 고립시키려고했을까요?

지난번에도 제가 말씀드렸듯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이유는

세계2위의 석유생산국가인 이라크의 석유공급을 확보하고

중동의 석유패권을 손에 넣기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연결해서 보면 그 이유가 더욱 확연해집니다.

중국과 이란의 연결고리를 끊고,

양국을 고립화시키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첫번째 초석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는것이라는 얘깁니다.

알카에다가 일으킨 9.11때문에 우연하게 불똥을 맞은것이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두번째 불똥을 반드시 이라크가 맞아야할이유는 하나도없었습니다.

핵무기나 생물학무기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그림6

2. 중국을 압박하는 3각포인트

다시한번이야기하지만, 미국이 진행하고있는 침략전쟁의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진행이되고있다고 봐야 옳을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타겟이 무었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중국입니다.

이란은 부시행정부의 최종목표가 아닙니다.

아무리 미국이 힘이좋다고 하더라도 8년내에

아프가니스탄-이라크-이란-북한-중국과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만한 능력은 없을것입니다.

그림7

지금 미국이 하고있는 행동은 소위 '곁가지를 치고있는' 것입니다.

진짜 메이저인 중국을 치기위해서

그 중국과 동맹하여 미국에 대항할가능성이있는 모든 국가들을 단속하고

포위전략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것이라고 봐야한다는 겁니다.

그림8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점령으로

이란은 적어도 미-중간의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중동에서 무슨일을 벌일만한 입지를 잃었습니다.

미국은 이란을 치지 않을것입니다. 그림 4 지도가 말해주고있으니까요.

중국을 포위하는 삼각포인트, 그 꼭지점중에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이고

미-중간에 분쟁이 발생하면

미국의 군사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중국의 서쪽으로 힘을 투사하게 될것입니다.

아니 직접적인 힘의 투사가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입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와는 달리,

미국은 중국과 전면전을 치를 계획은 없을겁니다.

핵을 보유한 중국을 직접친다는것은 너무나 위험한 계획이니까요.

그렇다면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미국이 소련연방을 분할시켰듯이 중국을 분할시키는 방법을 택하는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미국의 국무장관인 라이스의 주특기이기도 하죠.

소련의 붕괴를 통해서 능력을 인정받은 러시아전문가가 바로 라이스이니까 말입니다.

그림9

미국은 중국내의 갈등을 최대한 이용해서

간접적인 무력투사를 하는 방법으로 중국을 쓰러뜨리려고 하는것이죠.

아프가니스탄은 중국의 신장자치구, 티베트쪽에 맞물려있습니다.

중국내부의 최대약점중의 한곳이죠.

그림10

지금 미국이 그려놓은 중국을 둘러싼 세곳의 포인트에서 동시에 압력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신장자치구와 티벳의 독립움직임,

그림11

한반도에서의 만주갈등 ,

대만과의 분쟁을 동시에 유발하는것을 쉽게 연상할수가있습니다.

그림12

그것은 마치 한국전쟁때 중국이 참전함으로써 대만을 잃었던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입니다.

어느한가지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지도에서 설명이 빠진부분이있는데, 그것은 동남아시아이죠.

미국은 최근 인도와 베트남과 관계를 밀접하게 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역시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의 일환입니다.

그림13

그런데 미얀마(버마)가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이래

친중국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중국의 뱅갈만으로의 소통에 숨통을 틔여주고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미얀마를 불량국가 명단에 올려놓고있고

미얀마의 군부는 미국의 공격이 두려워서 지휘부를 산악으로 옮기려고 한다는 외신도있습니다.

인도,베트남의 움직임은

직접적인 미국의 군사력투사와는 큰연관이없지만

중국포위전략의 일환인것은 맞습니다.

미국이 대만을 부추겨서 중국과 분쟁이 발생했을경우

중국이 미국에 핵을 사용할수있을까요? 대답은 노우입니다.

해군과 공군은 몰라도 미국은 육군을 중국과의 분쟁에 투입하지 않을것입니다.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위해서 말입니다.

과거 한국전쟁때 러시아가 북한의 배후에서 막대한 공군력을 지원했듯이 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형태의 분쟁에서

중국이 직접적인 핵보복공격을 감행할수없다는것입니다.

물론 최근에 중국의 군강경파 장성하나가 미국에 경고를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곧바로 중국의 전략변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만과 중국이 분쟁에 돌입하게되었을때

미국은 대만을 일본과함께 해,공군력으로 지원할것입니다.

중국의 보병병력이 160만에 달하는반면에 해병대의 병력은 1만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대만의 해병대병력은 3만명에 달하지요. 총보병병력은 24만명수준입니다.
이러한 상륙전병력의 불균형이 말해주는것은

대만과 중국의 분쟁시에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걱정을 하는것보다는

오히려 대만의 해병대가 미국과 일본의 도움을 받아

중국대륙에 교두보를 확보하는것을 우려해야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대만의 전총통이었던 이등휘가 언젠가 언론에

진실은 미국이 48대의 핵잠으로 대만해협을 항시 지키고있다면서

중국은 겨우 미사일로 대만을 공격할수있을뿐이니 겁먹지말라고 했던말을 기억합니다.

그림14

3. 통일한반도를 만드는 키워드 (적의 적은 친구)

여기에 맞물려서 동북아의 한반도는 어떻습니까?

미국의 입장에서보면 북한을 빨리 정리해서

미-중간의 분쟁에 한반도에 주둔하고있는 미군의 병력을 동원하려고했을까요?

그렇다면 아마 미육군병력은 철수는 커녕, 증강을 했을 겁니다.

그들이 해군과 공군력만을 증강하고

육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려고하는 이유는

위에서도 설명드렸듯이

미-중간의 분쟁은 철저하게 대리전으로 치뤄질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림15

그렇다면 미국이 기대했던 지상군은 어디있을까요?

원래는 남한의 60만 육군을 그 기동대로 삼으려고했던것이 자명하다는 것입니다.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쥐고있는 상황에서 대만분쟁이 발생한다면

미국은 어떠한 핑계로든 한국군을 중국과의 분쟁에 끌어들이려고했을겁니다.

그림16

그런데 참여정부에 와서 문제가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1

미국의 전략적유연성 (까놓고 말하면 중국과의 패권전쟁)을

참여정부는 절대로 용인할수없다고 버티고나왔던겁니다.

사진2


아울러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일본의 꼬붕이 되기를 거부하고

한-일관계는 동맹관계가 아니다라는 선까지 나아가버렸으니

미국으로서는 난처한 지경이 된 셈입니다.

사진3

최근의 남-북관계 개선, 이과정에서 보여준 북한의 제스춰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북한은 분명히 여러차례에 걸쳐서 '미국과 우방이되고싶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그냥 립서비스로 보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이말은 정말 엄청난 의미를 담고있는 것입니다.

저는 북한의 외교파트만은 정말 스마트하다고 인정하고있습니다.

북한만큼 미국의 전략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있는 국가는 별로 없는것같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말하는 우방의 의미는 사실은 용병입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일전에 클린턴행정부시절에

북한과의 협상을 주도했던 미국의 관리가

TV에 나와서 한말중에 인상깊은 발언이있었는데

북한은 계속해서 중국과 자신들의 관계가 가깝지 않다는것을 강조했다는 겁니다.

즉, 미국의 전략을 백퍼센트 이해하고

이 상황에서 오랫동안의 숙적이었던 미국과 화해하고

오히려 미국을 도울수있다하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지요.

미국으로서는 이세상에서 제일 얄미운 북한을

친구로 받아들인다는것이 어처구니 없는 일일수도있지만,

우방이되고싶다는 말속에 담겨있는 의미까지 눈치채지 못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결론은, 한반도를 참여정부의 구상대로 연합(연방)통일시켜도

남한의 육군대신 북한이 그 역할을 맡아준다면 별문제가 없지않느냐하는겁니다.

아울러 2만5천의 해병대와 LPX등으로 상륙전능력에 박차를 가하고있는 남한을

대 중국분쟁에 끌어들일수있는 방법은

동북3성이라는 당근이외에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림17


위의 지도를 보면

내몽골자치주를 보라색의 선으로 표시해놨습니다.

몽골은 러시아의 일원이고 내몽골자치주는 중국의 영토입니다.

그 둘을 합쳐서 보면 얼마나 넓은 영토인지 가늠하실수있을 겁니다.

그림18

4. 러시아의 협력, 미국의 동의하에 가능한 한국의 동북공정

몽골이 남한에 친근한 정책을 써오고있는것은 대부분 알고계실겁니다.

그 절대적인 이유는 경제적인 협력도 있지만

바로 몽골의 독립과 옛영토의 회복가능성때문입니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줄수있는 세력은

통일 한반도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림19

언젠가 통일한반도는 중국과 간도문제로 영토분쟁이 반드시 일어날것이고

이러한 분쟁의 기회를 몽골은 놓치지 않으려고하는것이지요.

몽골이 내몽골자치구를 흡수할경우

그림17에서 A라는 지역을 한번 주의깊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대략 200km정도되는 직선의 좁은 구역입니다.

저구역을 장악할경우 중국의 동북삼성은 고립무원이 됩니다.

그영토를 한번 다시 보십시오.

옛 고구려의 전성기에 맞먹는 그림이 나옵니다.

물론 통일한반도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림20 광개토대왕-장수왕 때 고구려 영토 지도(말갈,선비,흉노,묘족,부여 모두 우리와 같은 민족입니다)

이러한 그림에 대한 동의가 필요할텐데, 러시아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의 러시아방문이후에 러시아와 한국은 매우 밀접한 관계로 발전하였고,

최근에 러시아는 동북아에있어서 한국을 최우선외교국가로 지정하였고

반면에 일본은 빼버렸습니다.

그림21

다시말해서 한국의 말은 들어주되, 일본의 말은 들어주지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이 원했던대로

시베리아석유파이프라인을 하얼삔을 거쳐서 한국으로 공급하는 안을

7월초에 푸틴대통령이 확정발표한것입니다.

그림22

( 하얼빈경유노선은 연해주경로로 대체되었씁니다-옮긴이)

문제는 미국인데,

과연 미국이 통일한반도 나아가 만주지역의 패권까지 한국에 넘겨주려할까,

또는 그 구상을 지지해줄까하는것입니다.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그림이 필요합니다.

그림23


문화일보의 2005년1월5일자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보하이만(발해만)지역에서

205억톤의 원유가 매장되어있다는것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매장량이고

가채량은 1/3수준인 70~80억톤으로 잡는다면

대략 중국이 30년은 소비할수있는 정도의 량입니다.(보도기사에는 80년)

중국이 매년 소비하는 석유의 량이 2억5천만톤(18억배럴)정도 되므로

이 발해만 유전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수있는 것이지요.

최근의 중국해양석유(CNOOK)가

미국의 석유메이저중의 하나인 '유노칼'을 인수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 발해만유전을 개발할 기술,장비,인력을 확보하기위함이라는 추측을 개인적으로 하고있습니다.

그림23-1 대조영이 이끌던 고구려유민과 우리형제 말갈족이 함께 세운 발해 영역

혹자들은 중국이 미국의 유노칼을 인수하는 이유가

충분한원유공급의 확보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유노칼이 가지고있는 대부분의 지분은

미얀마,인도네시아,베트남등에 산재한 유전과 천연가스등이며 (70%)

이중에서도 다시 1/3만이 석유입니다.

이들 지분은 2030년정도까지 장기공급계약이 이미 끝나있는 상황이므로

이 지분이 중국으로 공급될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야겠지요.

미국의 금융가에서 지적하듯이

중국으로서는 대외적인 협상력과 기술력을 확보하려는 이유가 가장 클것이라고 봅니다.

거기 덧붙여서 바로 발해만유전의 개발이 맞물려있다는것입니다.

문제는 이유정이 북한의 서한만까지 이어져있다는 것이지요.

최근에 나온 외신기사를 보면

북한의 석유탐사를 위해서 방북하였다는 이야기가 많이나오고

이들 유정이 발해만유정에서 이어져나온것이라는 기사도 간간히 흘러나옵니다.

위의 지도에서 보여지는 B선이 바로 중국-북한간의 국경인데

북한의 유전개발이 활발하게 진척되고있는곳은

해안에서 150km, 중국과의 국경에서 30km정도 떨어진 해상이라고 합니다.

만주의 간도문제와 맞물려서

이것은 통일한국이 훗날 중국과 엄청난 분쟁을 야기할수있는 문제가 될것입니다.

두번째 지도에 나왔던 A라인의 확보는

발해만 유전을 모두 한반도에 귀속시키는 결과도 가져올수가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이 패권국가로 커나가는것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을것이고,

자신들이 중국을 견제할수있는 한계를

이번 국방부의 보고서에는 10년으로 잡고있습니다.

그 10년안에 어떤형태로든지 미국은 결정을 내려야합니다.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유일한 세계의 경찰의 지위를 나누던지,

아니면 중국을 견제하는 조치를 취하던지 하는 결정을 말입니다.

미국은 이미 중국을 견제하기로 마음먹었고

부시행정부에서 취해온 테러와의 전쟁은

결국 패권국가로 발전하려는 중국을 견제하는 포석임을 이해할수가 있을것입니다.

중국이 분열되고 쪼개지더라도 발해만의 대규모 유전같은것을 보유하고있다면

미국의 전략은 실패로 돌아갈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일한반도가 이뻐서가 아니라,

미국의 패권전략에 의해서 이 지역의 지배권은

통일한국에 넘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겐 꿈처럼 보일지 몰라도 ,

미국과 중국에겐 코앞에 닥친 패권전쟁의 현실이며

1천5백년전의 고구려의 꿈은 우리당대에 이뤄질지도 모릅니다.

이런 그림들은 참여정부가 말했던

동북아중심국가가 현실화될수도있음을 말해주며,

노파심에서 덧붙여 설명한다면

우리가 중국과 전면전을 펼치는 일은 아마도 없을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의 주된전선은 대만이며

통일한반도는 중국의 힘이 약화되고 쪼개어질때 까지

중립을 지키면서 어부지리를 챙길수있는 힘만 가지고있으면 된다는 것이지요.

그 힘이 바로 통일한반도입니다.

그림24

이상 디씨역갤 인용끝.

위글중 일부사진은 이해를 돕기위해 본인이 첨부하였습니다.

이하 느티나무집 본문시작

위글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이 그루지야를 선동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얼마전 러시아를 침략군으로 묘사하는 언플을 한참했던 그루지야사태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림25

그림26

이전쟁은

미국이 그루지야를 선동하여 러시아를 끌어들인 전략이죠

그림27

잽도 안되는 그루지야가 미국의 지원없이 어떻게 러시아를 건드리겠습니까?

그림28

다음지도를 보시면 러시아를 포위하는데

그루지야와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지 아실겁니다.

그림29

그림30

위그림에서 보듯 미국은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터키에 주둔함으로써

러시아와 이란을 단절시키고 고립시키는데 성공하고 있지요

그림31

역갤글 본문에서 보시다시피 미국의 정책은

한반도 통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이이제이정책이 주골조입니다.

그림32

견제도 하고 무기도 팔고

님도보고 뽕도 따는 정책이랄까요?

그림33

여태까지는 남북긴장을 조성하여

남한에 많은 무기를 팔아먹고 덩달아 니뽄에도 팔아먹는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남한국방비가 북한국방비의 400백배나 되는 현실에서 더이상 통하는 카드가 아니죠

그림34

결국 중꿔카드로 니뽄과 타이완에만 무기를 팔아먹어서는 타산이 안맞기에

남북을 통일시켜 중꿔와 경쟁시키고

덩달아 불안해지는 니뽄에도 더욱 많이 팔아먹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림35

전시작전통제권도 노통의 업적이기도 하지만

미국프리메이슨방산자본의 책략이기도 합니다.

그림36

한국이 여차하면 일본과 한판뜰수도 있어야

불안한 일본이 무기를 사재기할테니까요

지금은 한국이 일본과 한판 붙고 싶어도 그럴수가 없죠

작전권이 없으니까요.우리의 군사주권은 미군이 들고 있지요...

한미연합사령관의 결재가 없으면 전쟁도 맘대로 못하는게 지금 한국입니다.

우리영해인 독도해역에 일본군함이 와서 설쳐도 언플만 하는 이유지요..

그림37

2012년 정말 볼만한 시대가 될겁니다.

대충 한번 2012년을 훑어 볼까요?

먼저 2012년12월 21일에 마야달력 13번째 백툰(backtun)이 종료한답니다...꺼림칙하죠?ㅋㅋㅋ^^

요즘 이거때문에 2012년 종말설로 분분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성경예언을 근거로 살펴보면 그날 지구종말은 절대 오지않는다에 한표 던집니다.^^

그림38

2012년 4월14일은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인데...미국의 패권이 끝나는 날일까요?

뭐 아메리카가 없어진다고 해도 더큰규모의 북미연합이 탄생하니까...별의미는 없을듯..

설사 북미연합도 천재지변을 만난다하더라도

나토 즉 유럽연합역시 중꿔를 견제해야 하기는 마찬가지 입장이니까

한국이 걱정할 일은 아닐듯..

그림39

2012년 4월 11일 국회의원선거...딴날당 참패..이메가 탄핵..대통령보궐선거..

세종시수정안폐기후 행정수도법통과로 입법,사법,행정 3권 모두 세종시및 대전시로 이전하여

조선시대 한양수도시대는 막을 내리고

2012년 4월17일 한미연합사는 해체되고

남한은 전시작전통제권 이양받아 명백한 군사주권국가가 되고 ..

2012년 FTA,WTO완전개방으로 방송,통신,금융,의료,제약,법률,농업,유통등 모든 시장 대혼란.

신자유주의 무제한침공개시

참고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23931

2012년 12월31일부로 1119개의 모든 아날로그방송은 종료하고 디지털 TV방송


딴나라떨거지들은 니뽄과 아메리카로 도주할거고

몽이는 정경유착의 댓가로 콩밥좀 먹을거고..

횬중주가 대폭락할거고..

누가될지...다음대통령은

남북통일과 다극화시대에 정신없는 5년을 보낼듯하네요

그림40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2012년 전세계 휴대폰충전기가 통일된다네요^^ㅎㅎ좋은 소식..

그리고 2012년 3월 유대인이 아닌 KGB출신 푸틴이 러시아대통령선거에 출마를 하죠..

말이 출마지..걍 취임하는겁니다 ㅎㅎㅎ.푸틴이 집권하면 러시아가 거의 짜르시대로 돌아갈듯..

러시아 아랍연합군이 이스라엘로 침공하는다는 성경예언대로 되어가는 모습이네요..

그림41

2012년 7월27일 3s정책의 총화인 올림픽 제 30회가 런던에서 열리고

2012년 9 ~10월 중국 18대 공산당전당대회가 열려서 후진타오 후임을 뽑지요

2012년 11월에는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고...뭐 개인적으로 오바마가 마지막 이라고 보지만 ㅎㅎㅎ

저는 북미연합이 오바마 임기중에 일어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2년 6월 제2대 유럽연합대통령은

임기3년6개월에 중임가능제로 EU헌법을 개정하여

적그리스도 7년통치를 준비할테고

(요건 제개인적인 생각이고요 현재 분석중인데 좀더 늦춰질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예언된 솔로몬성전문제와 종교통합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때문에 아직 좀 이르다는 생각입니다.^^)

2012년 정말 정신 없죠?^^

초강대국 대부분이 후임자를 뽑게 되고 경제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게 되는데...

아마 상상 그이상을 보게 되실겁니다...

성경에는 남북이 통일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날이 가깝다고 했는데...

남북이 통일될때 적그리스도도 나타난다고 하였죠...

리스본조약이 2009년12월1일부로 개시되었으니

제3대유럽연합통령이 2014년11월29일 취임하면 [설날]이...설날이 될듯...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간은...

그동안 교회 마당만 밟으며 갖은 행악을 일삼던 거짓 기독교인들이

개피를 보는 시원한 기간이 되겠네요

그런 노래가 생각나네요..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까치들 짖고 있을때 설날이 낼모레라는거..좀 알아 주셨으면...

그림42

여튼 한국이 통일되어 몽고르형제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신장위구르형제들이 독립투쟁을 가속하면

중꿔가 지금같은 영화를 누리기는 힘들죠...ㅎㅎㅎ

그림43

네팔소녀 루빠

거기다 중꿔 남서부에 네팔부탄등등은 혼혈이 좀 진행된곳도 있지만

모두 우리와 유전자 완전 동일한 형제들 아닙니까

그림44

저같으면 중꿔에 애들 유학보내서 중국어 열풍 일으키기 전에

몽고르로 날라가겠씁니다.ㅎㅎㅎ중꿔에 몰빵한 미x에셋..참 불쌍해지네요...(관련자님들죄송)

그림45

네팔소년 순버하둘

오늘 나오는 미군철수 언플은 사실 이메가정부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긴 경고라기보다는 이제 작업종료하고 미국으로 토낄준비를 하라는 사이렌이라고나 할까요?

이미 오래전 노통때 확정되었던 당연한 미군재배치를 생뚱맞게 언플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계속 엉뚱한 옆차기를 하고 있는 이메가 모리배들에게 미국이 직접 경고한 것이죠

남북긴장모드는 그동안 미방산자본과 함께

한국의 군부독재정권과 친일파들이 유용하게 써먹어왔으나

이제 대세는 남북통일입니다.

친일파수구보수세력들은 전작권이양을 최대한 늦춰서 득을 보려 하겠지만

지금 다급한 것은 오히려 미국이지요.

미국이 이미 십년전에 완료된 계획을 더 서두르고 있는 것은

중국의 경제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단하루도 전작권이양을 늦출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림46

이 상황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친일파들은

앞으로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땅에서 매장될 것입니다.

조만간 오사카부동산경기가 살아날듯..ㅎㅎㅎ

남한에서 탈출하는 친일파들때문에 ㅋㅋㅋㅋ

끝으로 노무현대통령과 현총독의 집무실을 비교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그림47

노무현 집무실.보이십니까 전략전술무기 프라모델들...

그림48

ㅎㅎㅎ 깨끗하시군요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기뻐하십시요

드디어 때가 다가오고 있씁니다.

이상 느티나무집 까치 올림

OTL

http://www.cyworld.com/2LS

출처: http://blog.daum.net/kimuks/7529550


다른버전:

지도로 보는 미국의 패권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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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NORTHERN TERRITORY WITH MT.BAEKDU
간도 is Korean Territory

 


 

 

 

 

간도임시정부, '간도 땅 되찾기' 헌법소원 내기로
'동북공정 진행하는 중국, 한국은 뒷짐만'

재미 교포 기업인, 간도 되찾기 운동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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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임시정부
, '간도 땅 되찾기' 헌법소원 내기로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간도임시정부는 간도를 대한민국 영토로 귀속하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내고 일본에도 간도 반환소송을 제기키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간도임시정부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도는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고 고구려의 기상이 살아 숨쉬는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가 1909년 9월4일 만주지역 철도부설권 등 이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준 뒤 중국이 오늘날까지 불법 점유하고 있다"며 원상회복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에 헌법 제3조에 명시된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 및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문항에 '고유영토(간도 포함)' 문구를 넣는 헌법 소원을 조만간 제기할 예정이다.

또 초중고교 역사교과서에 간도 역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는 한편 한국 영문표기를 'KOREA'에서 'COREA'로 개정할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이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본인의 의사가 아닌 타인에 의해 이뤄진 간도 땅' 원상회복 소송을 진행하고 내달 4일에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같은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앞서 조선과 청나라간 백두산정계비에 적힌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에서 토문강이 두만강인지 해란강인지를 두고 논란이 이는 등 간도 영유권과 관련해 오랫동안 분쟁이 있어왔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인 2004년 청나라와 일본간 체결된 간도협약에 대해 "법리상 무효"라고 밝힌 바 있다.

기사입력 2011-08-1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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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스탄'(영어의 랜드로 끝나는 나라처럼 땅을 의미)으로 끝나는 나라들과 과거 우리나라 잘나가던 시대와 역사적 개연성이 있는 기사이다.

동북아역사재단 '…바위그림' 화보집 - 창 든 기마병, 고구려 고분벽화와 비슷… 한반도와 북방 문화의 관련성 재조명

단단한 바위 표면 위에 긴 창을 든 무사가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또렷하다. 들고 있는 창에는 깃발까지 펄럭인다. 카자흐스탄 동남부 지역 유적지에서 발견된 바위그림(암각화)이다. 6~8세기 투르크(돌궐)족이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13일 펴낸 화보집 '카자흐스탄의 바위그림'에는 이런 날쌘 기마 인물상을 담은 바위그림이 수두룩하다. 2009년 카자흐스탄 교육과학부 고고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유적지 13곳을 탐사한 결과를 모았다. 알타이산맥 서쪽의 선사 및 고대 바위그림이 국내 학계에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고구려 고분 벽화와의 유사성. 5세기 후반 고구려 유적으로 유명한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의 삼실총(三室塚) 벽화에도 창을 꼬나 든 기마병이 말을 달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동북아역사재단 장석호 박사는 "기원을 전후한 중앙아시아권 암각화·벽화에는 말이 서 있지 않고 발을 엇갈리게 달리는 형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며 "한반도 북부 우리 조상의 고대 문화가 중국보다는 북방 계열의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닮은 꼴' 그림 - 카자흐스탄 동남부 쿨자바스이 지역에서 발견된 6~8세기 투르크족의 바위그림(왼쪽)과 중국 지린성 지안의 5세기 후반 고구려 유적인 삼실총 벽화. 두 그림에서 창을 든 기마병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닮았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그동안 한국 선사 및 고대사 연구는 중국 사료를 중심으로 진행돼 오면서 스스로 중국 문화권에 갇히는 경향이 있었다. 장 박사는 "남부시베리아, 몽골, 키르기스스탄, 중국 북부, 한반도 등을 아우르는 광역의 문화권을 함께 비교 연구함으로써 우리 민족 문화의 계통을 밝히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보편성과 우리만의 독자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카자흐스탄의 바위그림' 화보집에는 암채화(바위에 물감 그림), 암각화(바위에 조각)가 망라돼 있다. 기마 그림 외에도 독수리나 산양, 호랑이 등 다양한 동물 형상, 사람의 성관계를 묘사한 에로틱한 장면도 포함돼 있다.

201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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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영양태왕이 드디어 요하를 건너시다


우리는 태양의 자손이다.
그 옛날 천지가 우리조상님들의 것이었을때,

사람들은 모두 저 삼족오를 숭배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하냐? 중원의 무리들은 까마귀를
흉조라 하여 무섭고 두려워한다. 그것은 수많은 세월동안 우리 선조들에게 복속되었던
과거를 생각하며 지난날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오랜 옛날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와 한국을 건설하신 지 천년 뒤에 단군 왕검께서 다시 아사달에 도읍을 열어
조선을 세우신 지 수천 년이다.

-영양왕이 건무에게 하는 대사중에서 -


출처:본인의 이전 블로그에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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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쥬신제국[大朝鮮帝國] 과 배달국 제18세 커붉단한웅 [倍達國 第18世 居弗檀 天皇]

* 우리 민족이 사는 온누리를 쥬신(朝鮮, 肅愼)이라 한다.

           [민족의 기원 - 바이칼호의 전경]
* 우리 민족은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하여, 바이칼호를 거쳐 불함산으로 이동 정착하였다. 불함산에 도착한 우리 조상들은 그곳을 중심으로 집단 정착 문화를 발달시켜, 서기전 6000년경에는 홍산문명을, 이어서는 황하문명을 일으켰다.

* 우리 조상들은 이미 서기전 3898년에 배달나라를 세우고, 농경민족인 중화족을 제압해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 배달나라는 18대 1565년으로 끝나고, 그 뒤를 이어 단군쥬신이 세워졌다.

* 단군쥬신은 아사달을 도읍으로 제국을 형성, 신(진)쥬신을 중심으로 말(마)쥬신과 불(번)쥬신의 세 단군이 넓은 지역을 나누어 다스렸다.

* 개아지 쥬신(기자조선)이나 위만쥬신(위만조선)은 쥬신 제국의 지방 제후국이었다. 따라서, 한무제의 위만쥬신 정벌은 중화족과 지방 정권과의 투쟁이었으며, 중국사서가 고집하는 이른바 한사군(漢四郡)은 한무제 퇴치에 공이 큰 장군들에게 분봉한 영지였다.

* 단군 쥬신이 나약해지자, 해모수의 부여와 동명왕의 가우리를 함께 계승한 고두막루칸이 제국을 아우르고 졸본부여를 일으켰다.
* 부여가 일어나면서 제국의 권위가 떨어져 지방 세력이 성장하였다. 서기전 3세기경에는 황하 상류에 살던 동호족의 한 갈래가 흉노에 밀려 남하, 서기전 57년에 서울에 자리 잡고 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이 실라(신라-新羅)이다. 실라는 이후 마한, 백제와의 투쟁과정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서라벌로 옮긴다.

* 서기전 37년에는 졸본부여에서 성장한 추모(고주몽)가 부여를 탈출 졸본지방에 이르러 가우리(고구려)를 세우고, 이어 북만주 일대를 통일하였다. 이때 가우리 건국의 공신 협보가 일본지역으로 달아나 최초의 나라 다파라국을 일본지역에 세웠다.

* 백제는 가우리 건국 과정에서 배신감을 느낀 황비 소서노와 그 아들 비류, 온조가 가우리를 탈출, 비류호 지역에서 독립한 나라이다. 이후 백제는 요서 지역으로 옮겼다가(외백제) 다시 충청남도 아산 지역(목지국)으로 옮겼다. 이 시기에 온조가 독립, 십제(한성백제)를 세웠으니, 백제의 아우 나라이다.

* 아산에 정착한 비류백제는 요서, 산동, 일본 지역을 포함한 넓은 해상 제국을 세우고, 각지에 담로를 두어 다스렸다.

* 가우리의 제국 통일로 중앙 정권에서 밀려난 옛 쥬신의 중신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한반도 남부로 밀려왔는데, 그들에 의해 6가야 연맹이 성립되었다.

* 가야가 신 영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일본 진출의 교두보로 설치한 것이 이른바 임나이다. 임나는 우리말로는 참고 견딘다는 뜻이고, 일본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주군이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 가야의 일본 진출 이후 왜 열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백제, 가우리, 실라가 다투어 그 지역에 진출했는데, 가야 계통인 가라, 아라, 신라계통인 무라, 백제 계통인 곰, 담로 등과 관련이 있는 지명은 모두 이 시기에 개척된 곳이다.
 
* 비류백제의 일본 지역 통치 과정에서 백제 황통의 계승을 위해 전 담로를 제압하고 세운 것이 바로 천황 국가의 시작이다. 이 때의 토벌장군인 경진주는 백제의 대장군이었고, 천황 선선저도 백제에서 파견된 백제 황족이었다.

* 신무왕은 현지처를 취한 선선저 황자를 대신해 백제에서 보낸 새로운 천황으로서, 왜 열도 동부 정벌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 실라 왕자 천일창의 왜 열도 공략 이후 혼슈 지방을 둘러싼 백제, 실라 간의 다툼이 격화되었는데, 가우리도 곰벌을 근거로 세력다툼에 뛰어들어 왜열도가 전화에 휩싸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백제는 경행왕을 파견하였다.

* 삼국유사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는 실라에 망한 마한 유민의 왜 열도 이주를 가리키며, 이 세오녀가 바로 비미호이고, 그 딸이 신공 여왕이다.

* 해상 제국을 이루었던 비류백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침공으로 본국 곰나루를 빼앗기고 일본 지역으로 피해 갔는데, 이 이가 응신천황이다. 응신은 나라백제를 세우고, 그곳을 중심으로 본국의 곰나루백제를 지배하였다.

* 곰나루백제의 혼란을 틈타 실라는 왜 열도에서의 세력 만회를 꾀하였다. 이 때 실라의 주도로 이루어진 일본의 개혁이 이른바 다이카 개신이다.

* 부여 천도 후 내정을 정비한 백제가 실라를 압박하자, 실라는 가우리의 중원 통일을 위한 전 민족적 협력 제의를 물리치고 당과 야합, 백제를 멸망시켰다.

* 본국 백제의 멸망을 본 나라백제는 전 국력을 동원해 본국의 부흥을 시도하였으나, 파견군과 본국 홍기군과의 불화로 실패하였다.

* 백제 멸망 후 당은 중국인의 숙원인 고구려 정벌을 위해 수차례에 걸쳐 고구려를 침입하였으나, 번번히 가우리의 강력한 힘에 막혀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다.

* 가우리는 연개소문 사망 후 그 아들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났고, 권좌에서 밀려난 남생이 당나라 군대를 불러들임으로써 어이없게 자멸하고 말았다.

* 쥬신의 전통을 계승한 가우리는 이 때 우리 민족 관련 기록들을 민족 보호 차원에서 모두 소각했는데, 이 때문에 그 후의 우리 역사가 왜곡되었다.

* 가우리 자멸 후 그 유장인 대조영, 이진충 등이 협력, 당에 대항하면서 민족 부흥을 내걸고 발해를 건국하였다. 발해는 그 영토와 건국 정신에서 고구려 계승 정신을 뚜렷이 하였다.


대씨 가우리 입국
* 서기699년, 대중상 황제에 이어 황위에 오른 대조영은 이 해에 개원하여 천통이라고 국호를 대진국이라 하였다.

* 옛 가우리를 이끌던 고씨들이 적극적으로 새 정부에 참여함으로써 대씨가우리는 곧 안정을 찾게 되었으나 북국의 강력한 흑수부와의 협상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천 년에 걸친 부여족(고씨가우리)에 대한 원한으로 흑수부가 새 정부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까닭이었다.
* 대조영은 조각을 단행하고 태자 대무예를 보내 당과 상호 승인 협정을 맺은 뒤 황제의 외삼촌인 대무예를 주당 초대 대사로 파견하였다.

* 서기719년, 대조영의 뒤를 이어 대무예가 제위에 올랐다. 모든 이가 새 황제의 즉위를 축하 하였으나, 제위를 노리던 대문예는 역모를 꾀했고 이에 실패하자 당으로 달아났다. 이 와중에 역모에 연루되어 흑수부의 대칸 예속리기가 처형되었고, 이로써 어렵게 민족 통일은 달성될 수 있었다.


대당 징벌 전쟁
* 당 징벌전을 벌이기에 앞서 대무예는 당의 동맹국 실라를 견제하기 위하여 고인의 등을 일본에 파견, 동맹을 맺었다, 장문휴를 연합군 총사령관에 임명하여 당조의 목을 조여 가던 중, 실라의 이적 행위로 인하여 눈물을 머금고 회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때 장문휴는 산동지구의 가우리 유민들로 등주군을 조직하고 산동을 중심으로 한 점령 지구를 지키게 하였다. 이적 행의를 일으킨 실라군은 무참하게 섬멸되었다.


세종광성 문황제
* 서기 737년, 대흠무가 제 4대 제위에 등극하였다. 대흠무는 문치에 힘써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한편으로는 거란인 안록산을 사주하여 대당 분쇄전을 시도하였으나 거듭된 대연국(서기 756년에 안록산은 낙양을 점령하고 대연국을 세운 뒤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의 내분으로 결국 이적치적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동이의 고지 산동 반도
* 산동반도는 동이족과 화산족의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대흠무는 이정기를 요양황으로 봉하고 등주에 대가우리의 대표부를 설치하였다. 이정기는 산동 반도를 완전히 통일하고 당의 대동방 무역을 독점하였다. 대가우리와의 교역이 늘어나 양국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반면 당은 이정기의 자비심에 의존해야 하는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이 시기 대가우리와 일본과의 무역도 대단히 활발하였다. 일본의 급격한 문화발전은 바로 이때 이루어졌다)

* 제국(이정기의 아들 이납이 왕위에 오르면서 제나라로 개명하였다)의 제4대 이사도는 전국 총동원령을 내려 당의 동도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이 또한 실라(신라)의 이적 행위와 이사도가 피살됨으로써 실패로 끝났고 제국은 결국 망하고 말았다. 모처럼 다물(多勿)했던 불쥬신의 청구땅(산동지구)은 다시 화산족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동경천도와 대원의의 난
* 그러면 제나라의 멸망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대가우리의 속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미 노령에 접어든 대흠무 황제는 당 토멸에 가장 큰 장애물인 실라를 제거하기 위해 남쪽 국경의 동경성으로 천도하고 남정군을 조직하여 대원의를 사령관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대흠무 황제가 쓰러지자 대원의와 황자들 사이에, 또 황위쟁탈전이 벌어져 제나라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결국 황권은 막내 황자인 대숭린에게 돌아갔다.
 
 
불쥬신의 후예들
서기 872년 부여족으로 구성된 거란 세라부에서 거란의 대영웅 야루철리지가 태어났다. 서기 901년 이리근(군사령관)에 오른 야루철리지는 서기 906년 마침내 대망의 칸으로 선출되었고, 국민들은 그를 국부 즉 아버지(중국 발음으로 아보지)라 불렀다. 거란 전통의 3년 질립제를 해제하고, 거란 제부를 완전히 통일한 아버지는 마침내 서기 916년 황제위에 올라 대가우리 정벌에 진력하였다. 그 일환으로 황숙 할저와 그의 두 아들이 대가우리로 거짓 망명하였고 황위를 노리는 대가우리의 정보부장 대소현과 밀약을 맺은 뒤 돌아왔다.

대씨 가우리 제국의 최후
서기 925년 12월 아버지 황제는 전국 총동원령을 내려 대가우리 원정길에 올랐다. 거란군은 대소현의 안내로 가우리의 요새들을 교묘히 우회하여 전광석화 같이 대가우리의 도성인 홀한성을 공략 대가우리를 멸하고 동단국을 세웠다. 그러나 대가우리의 각 지방군들이 기병하기 시작하였으니 본격적인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셈이었다.
격무에 시달리던 아버지 황제가 죽자 태자이며 동단국의 왕인 인황왕과 거란의 병권을 쥐고 있던 둘째 황자 요골사이에 치열한 황위쟁탈전이 벌어졌다. 이때 인황왕은 대가우리 다물군의 공격목표가 홀한성임을 깨닫고 요양으로 천도하면서 홀한성의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다.

왕씨 가우리의 천하통일
서기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왕건은 호족들과의 정략적 결혼 정책을 통해 국력을 하나로 통합해 갔고 또 대가우리가 망하면서 망명해온 유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 국력을 다져나갔다. 이때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었던 후 백제의 견훤이 왕자 신검 등에게 유폐되었다가 탈출, 왕건에게 투항하여 왔고, 실라왕 김부가 천년사직을 들어 왕건에게 의탁하였다. 왕건은 나머지 신검군을 섬멸하고 963년 마침내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대김(金) 제국
시조 김함보부터 시작된 김나라는 왕씨 가우리 및 대요제국(거란)과 대립하면서 성장하였다. 서기 1115년 정월 김아구타는 황위에 올라 국명을 대김제국이라 하였다. 대김제국이 대요제국과 최후의 승부를 겨루어 승리함으로써 천하의 주인 자리는 불쥬신계에서 다시 신쥬신계로 넘어가게 되었다.

강력했던 동이의 제국 김나라는 1234년 몽골(원)의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고려는 몽골의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하여 장기전에 돌입하였으나,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나약한 세습왕의 친정체제로 돌입함으로써 결국 출육환도하게 되었다. 이때 삼별초를 이끌던 배중손은 출육환도에 반대하고, 왕족 승화후 온을 새 임금으로 옹립, 반몽 정권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려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
려몽 연합군은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원정을 단행하였다. 몽골의 요청에 고려는 기꺼이 응했다. 고려로서는 당시 고려해안을 심히 어지럽히던 대마도 및 일지도 등의 왜구 토벌이라는 당면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친 몽고의 일본 원정은 일본 일대에 불어 닥친 태풍으로 인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고려는 당초의 왜구토벌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개선할 수 있었다.

최무선
두 차례에 걸친 해적 소탕전으로 일시 주춤했던 왜구들이 다시 고려 해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1334년 가마쿠라 막부가 망하고 일본 황실이 남북으로 갈라져 내전에 돌입함으로써 백성들은 극도로
피폐해졌고, 따라서 이들이 다시 도적떼가 된 것이다.
최무선은 왜구들을 바다에서 원천 봉쇄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화약과 화포 발명에 진력하여 왜구 토벌에 혁혁한 공헌을 세웠다. 1389년 박위는 전선 백여척을 이끌고 나아가 왜구의 소굴 대마도를 토벌하였다. 이 작전은 고려의 마지막 해군 작전이었다. 고려는 3년 후에 있은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망하고 말았다.

역성혁명
몽골의 지배하에 있던 한족들이 몽고를 몰아내고 명을 건국한 뒤, 계속하여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왔다. 이는 실지 회복이라는 고려의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고, 급기야 고려는 1388년 요동 정벌을 단행하게 되었다. 4대 불가론을 내세우며 끝까지 요동정벌 철회를 주장하다가 마지못해 출정한 이성계는 결국, 위화도에 이르러 회군을 단행하고야 말았다.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이성계는 문신을 우대하였고 그 결과 조선의 군사력은 점차 무력화되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은 아버지의 화약 제조법을 더욱 개량 발전시켜 훗날 이순신 함대를 통해 그 위력을 증명하게 된다.

조선 해군과 대 제독 이순신
이씨 조선은 한동안 태평세월을 맞이하였고 당파싸움만 일삼았다. 반면 일본은 1460년 영주들간의 혈전이 시작되고 있었고 이후 약 120년간 약육강식의 전국시대가 계속 되었다. 1536년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당시 최강자였던 오다 노부나가 밑에서 성장하여 마침내 전국을 통일하고 눈을 밖으로 돌렸다. 조선 통신사로서 일본에 갔다온 정사 황윤길(서인)과 부사 김성일(동인)의 진술이 엇갈려 설왕설래하다가 조선은 결국 1592년 임진왜란을 맞게 되었다.

 

배달국 제18세 커붉단한웅 [倍達國 第18世 居弗檀 天皇]

대쥬신제국[大朝鮮帝國]

커붉단 한웅
 

개천(開天) 1518년: B.C 2380년, 커불단(또는 커붉단) 태자는 배달국 제18세 한웅으로 제위(帝位)에 올랐다. 그 동안 배달국[倍達桓國-밝달한국]은 천해(天海-바이칼호)로부터 동쪽으로 옮겨와 븨류호로부터 영고탑까지의 넓은 북만주를 정복하며 정착에 성공했고, 또 중국 산동성일대에 대한 중화족들과의 마찰도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커불단한웅은 지금까지 고수해오던 정책을 바꾸어 서서히 남쪽만주(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남만주와 함경도일대)일대를 욕심내기 시작한 듯 보인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는 남만주일대는 기마민족인 민족이 서쪽으로부터 이동하여오기 훨씬 전부터 먼저 정착하여 살고있던 농경토족(農耕土族)들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의 고기(古記)에 보이는 웅족(熊族)이 그들이다.
웅족의 웅(熊)자는 곰이라는 뜻인데 이 글자는 우리의 옛말로 지신(地神)을 의미하는 “”의 발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선택한 글자이므로 웅족(熊族)은 곰족이 아니라 족(감족)이라고 읽어야 옳을 것이다.



우리 민족사의 가장 중요해 보이는 이들 두 종족의 결합은, 새로 침략해 오고 있는 배달국족을 하느님을 부모로 하는 천손족(天孫族)으로 하고, 선주 농경토족인 족을 지신족(地神族)으로 하여 하늘과 땅이 절묘하게 결합하는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그린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들의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족의 이웃에 또 하나의 종족이 보이는데 고기(古記)는 이들을 호(虎)족이라고 쓰고 있다. 호(虎)는 호랑이를 뜻하므로 족을 곰(熊)족으로 쓰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과 분쟁상태에 있는 그들을 호(虎)족으로 호칭한 것으로 보인다.

호(虎)족과의 싸움에서 밀리게 된 족들은 북쪽의 강국(强國)인 배달국과 협상을 제의하고, 족의 공주를 커불단한웅에게 시집보내면서 동맹을 요청한다. 이에 커불단한웅은 지신(地神)의 지위에 있는 녀(巫女)를 황후(皇后)로 맞아들이고 동맹을 받아들인 후 군대를 파견하여 족을 위기에서 구해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배달국의 황후가 된 녀황비는 B.C 2370년 5월 2일, 인시(寅時)에 대쥬신제국[大朝鮮帝國]의 시조(始祖)가 되실 단군성조(檀君聖祖)를 생산하였다.


옛 기록에 의하면,
‘그분의 덕망(德望)이 천인(天人)과 같아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그의 나이 14살 때 족의 임검 웅씨(熊氏)왕이 그의 신성(神聖)함을 듣고, 그를 부왕(副王, 裨王)으로 삼아 임검을 대신하여 나라일을 행하게 하였다.’

이상의 기록은 그대로 믿어도 좋아 보인다. 녀황비(熊女皇妃)는 단군성상(檀君聖上)의 나이가 14살에 이르자 이제는 제왕이 될 준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황자(皇子)를 족의 나라로 보내어 이미 늙고 기력을 잃은 친정아버지를 도와 나라를 이끌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단군(檀君)께서는 무려 24년 동안 족의 나라를 통치했는데 그 동안 늙은 외조부(外祖父)가 죽자 나라의 전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여 나라를 일약 강국의 위치로 올려놓은 듯하다.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개천 1565년, 상달(上月-10月) 3일에 이르러 신인(神人) 임검(壬儉)이 오가(五加)의 우두머리로서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단목(檀木)의 터에 자리를 잡았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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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3LegsCrow::하늘날다 두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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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2일 수요일

우리의 땅 ‘간도(間島)’, 이대로 멈추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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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땅 ‘간도(間島)’, 이대로 멈추고 말 것인가


앞으로 4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돌아오는 9월4일은 간도를 빼앗긴 지 꼭 100년이 된다. 우리 세대에서 ‘되찾아야 할 우리의 땅’ 간도(間島)를 찾지 못하면 영원히 잊혀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 9월4일은 국치일로 남게 될 것이다.

간도(間島)란 무엇인가. 갈수록 낯설게 느껴지는 이 곳은 지금 중국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땅이며 우리의 영토이다.


1712년 백두산 정계비문에 근거한 조선도<백산학회 제공>
1905년 을사늑약으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는 남만주 철도부설권과 탄광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청에 간도 땅을 넘겼다. 그 후 1909년 9월4일 청·일 간도협약을 통해 조선과 청의 국경을 두만강과 압록강 경계선으로 획정 지었다. 결국 을사조약은 일제가 강압적으로 맺은 대표적인 국제조약으로 간도협약은 당연히 무효이며 국제적으로도 확인된 상황이다.

설령 간도협약이 유효하더라도 당사국인 청-일간에만 효력이 발생하며 의도적으로 배제된 대한제국에는 아무런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정당한 권리없이 점유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해야 한다.

간도(間島)문제 정부 ‘천하태평’…정치인들도 무관심

하지만 역대 정부나 정치권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천하태평이다. 그동안 역사와 영토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더라도 이런 우려가 절실히 드러난다. 굴욕외교로 비난을 샀던 1992년 한·중수교 당시에도 우리 정부는 일부에서 제기했던 ‘간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특히 2004년 1월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졌을때도 “중국의 역사왜곡 행위를 정치문제화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저자세를 취했던 것도 사실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 분통이 터진다. 일본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는 독도와 동해에 대해서도 50년이 넘도록 끈질기게 이의제기를 해오고 있고, 특히 독도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아주 사소한 문제에도 사사건건 간섭하고 항의를 해오고 있다. 이는 독도 영유권과 독도가 한국땅으로 굳어지는 것을 저지하고, 국제법상 영토시효론에 근거해 유사시 연고권을 빼앗으려는 계산된 행동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중국은 더하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염려해 일찌감치 영유권 분쟁의 가능성이 있는 동북3성(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 지역 단속에 나섰다. 북한이 붕괴될 경우 이 지역으로 넘어오는 난민들로 인해 한민족의 근거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또 간도지역이 독립운동의 기지가 됐던 것처럼 통일 후 한국인의 또 다른 근거지가 되는 것을 미리 막으려는 의도도 내포돼 있다.

이처럼 일본과 중국은 벌써 수십년전부터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저히 계산된 준비를 해오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며 단순 대응으로 넘어가려고만 하고 있다. 간도 등 고구려사 문제도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덮어버리려 하고 있다.

더욱이 국민의 안위와 국가보전에 필요한 지식을 갖춰야 할 정치인들 대다수는 역사적 무지와 무관심속에 정권의 치적을 쌓는 데에만 급급하고 국가의 미래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2004년 서울시장 재임시절 ‘간도’ 문제에 대해 “한반도 문제와 관련 중국의 영향력과 역할이 너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정면대결을 피하고 싶을 것”이라고 당시 정부를 비난했었다. 그러면서 “역사와 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니다”며 “(역사와 영토는) 국가적 중요이슈이고 이는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간도되찾기운동본부 육락현 회장은 “간도영유권의 중요성은 다가 올 통일시대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위상”이라며 “우리정부는 조선족이 해체되기 전에 간도영유권을 분명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육 회장은 이어 “정치인들도 선거철 등 특정일에만 나라위하는 척 하지말고 자발적인 국민운동에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간도(間島)는 왜 우리땅인가
첫째, 원래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잇는 선이 아니었다.
- 우선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을 표시한 여러 지도들이 간도와 우리땅임을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인 지도 제작자 레지는 비망록에 “봉황성의 동방에는 조선국의 국경이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조선정계비구역약도(규장각15504)’와 ‘백두산 정계비도(규장각26676)’, ‘로마 교황청의 조선말의 조선지도’(1924년 제작) 등 당시의 수많은 지도들은 동간도를 토문강 동쪽 지역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압록강 북쪽의 봉황성 일대에서 두만강 위쪽의 연길로 이어지는 구격이 표시돼 있다. 이런 자료들로 살펴볼 때 적어도 1909년 간도협약 이전까지는 이같은 국경선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우리가 간도를 선점적으로 개간했다.
- 간도지역은 조선과 청나라가 맺은 강도회맹에 의해 출입이 금지된 봉금지역으로 양국이 공동관리하는 무주지였다. 무주지는 국제법적으로 선점하여 개간하는 쪽이 영유권을 가지게 되는데 간도에 대한 우리의 개간은 무주지 선점이론에 의한 영토획득의 의미가 있다.

셋째, 조선이 실질적인 행정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 조선은 1900년과 1903년에 서간도와 동간도(북간도)를 행정적으로 각각 평안북도와 함경도에 편입시켰으며 세금을 징수하여 행정과 군인훈련비로 충당했다. 이런 사실들은 조선의 행정력이 간도에도 똑같이 미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간도는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인가
간도는 좁은 의미로 볼 때 백두산 정계비에서 언급된 두만강 이북과 토문강 이동 지역인 동간도 혹은 북간도를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압록강 이북 지역인 서간도도 포함한 남만주 전체를 가리킨다.

간도 영유권 분쟁 당시 우리 선조들은 동으로는 토문강에서 송화강을 거쳐 흑룡강에 이르는 연해주를 포함한 광활한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서쪽으로는 압록강 대안을 포함해서 고구려의 영토였던 요양과 심양 일대(소위 심요선)까지의 봉금(封禁)지역이 포함된다.

간도의 면적은 얼마나 되나
학자들마다 간도의 면적에 대해 설명하는 바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백두산 정계비가 정한 국경을 지도 위에 표시해보면 그 크기는 한반도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여기에 압록강 대안지역인 서간도까지 포함하면 간도의 면적은 한반도의 1.5배에 해당한다.

일부에서는 간도의 크기를 한반도 면적의 약 10분의 1 정도인 2만1000㎢라고 하는데 이는 일제의 간도파출소가 관할하던 일부 지역만 산정한 잘못된 수치다.

간도를 찾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국제법상 강제로 주권을 침탈한 국가가 맺은 조약은 아무런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기 때문에 간도협약 역시 효력을 상실했어야 마땅하다. 중·일간에는 1941년 이전의 모든 조약이 무효라고 합의가 있었고, 한·일간에도 1910년 8월 22일과 그 이전의 모든 조약이 무효라는 확인이 있었다.

그러나 간도협약은 광복 후 혼란기, 한국전쟁, 남북분단의 상황을 거치면서 아무런 이의 제기가 없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효력이 지속되고 있다. 국제법 학자들은 간도협약은 국제법의 통념상 틀림없이 무효화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의 입장은
북한은 간도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간도 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북한의 태도에 대해 중국과 사회주의 이념을 함께 하는 형제국가라는 난처한 입장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그보다는 북한과 중국이 맺은 비밀조약이 북한의 입을 막고 있다는 해석이 더 신빙성 있어 보인다.

북한은 1974년 중국과 ‘조·중 변계조약’을 맺고 새로운 국경선을 획정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비밀조약으로, 정확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어쨌거나 남북이 통일될 경우 ‘조·중 변계조약’은 비합법적 정부간에 체결된 조약이라는 이유로 무효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도 가정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정부가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고 나서는 것이 문제를 푸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간도협약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이를 중국과 국제사회에 즉각 알려야 한다. 이를 통해 간도 문제를 국제사회의 이슈로 부각시키고 영유권 분쟁이 있는 지역임을 공인받아야 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는 재중동포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간의 영유권 분쟁시 현지 주민의 의사가 중요한 결정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인구는 전체 주민의 40%선((2004년 추정)으로 떨어지는 등 10년 내에 조선족자치주 자체가 소멸될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다.

따라서 간도에 대한 영유권 확보에 있어서 재중동포의 와해를 막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사업은 대단히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또 중국의 동북공정의 궁극적 목표가 간도영유권의 고착화에 있음을 간파하고 역으로 우리는 간도의 영유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우리의 영토를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정한 헌법 제3조의 내용을 북방영토를 포함한 내용으로 수정해 교과서 및 역사서, 각종 지도에 간도지역이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도움말=한국간도학회·간도되찾기운동본부>

<경향닷컴 서상준기자 ssjun@khan.co.kr>

더 많은 자료는 이곳(http://durumul.blogspot.com) 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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