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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ul Korea'에 해당되는 글 79

  1. 2016.09.29 치우천황(chiwoo)
  2. 2016.09.29 고대 한류를 밝힌다.
  3. 2016.09.29 역사스페셜-요하문명의 발견-요하공정
  4. 2016.09.19 2020년 한국이 중국멸망 시킨다
  5. 2016.09.19 요하문명 한국의 시초
  6. 2016.09.17 발해를 꿈꾸며
  7. 2012.12.28 정부, 2배넓어진 바다밑 영토 공격적 동아시아 외교전쟁
  8. 2012.12.03 새로운 변화로 가는 대한민국 (1)
  9. 2012.06.08 中, 역사 침탈 중대위기
  10. 2012.06.01 "대마도(DaeMaDo)주 조상, 宗氏 아닌 한국인 宋氏"
  11. 2012.05.28 동중국은 백제의 일부였다 (1)
  12. 2012.05.27 TimeLine Map of Korea
  13. 2012.05.26 World React about DokDo of Korea(세계인의 독도에 대한 반응)
  14. 2012.05.14 고조선과 카자흐스탄 샤크족(주작)의 관계
  15. 2012.05.14 첫나라 고조선, 수도는 어디였나?
  16. 2012.05.14 자객 고영근, 명성황후의 원수를 베다
  17. 2012.04.26 미연방의원 동해,독도 지지
  18. 2012.04.26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19. 2012.04.26 朝鮮海 (=Sea of Korea) vs 日本海(=Sea of Japan)
  20. 2012.04.22 동해전쟁-백악관 동해 표기 서명 바로가기 (2)
  21. 2011.10.31 KBS 광개토태왕 역사날조 심각 범죄급
  22. 2011.10.23 세계최초 로켓 - 신기전 The world's first Rocket (1)
  23. 2011.10.05 A Part of Korea History vs China History
  24. 2011.10.03 볼리비아에도 '가나다라' 한글 수출
  25. 2011.09.29 Return Gando (Jiandao) region to Corea (Korea)
  26. 2011.09.16 바이칼에 도착한 순간, 화장실에 갇혔네
  27. 2011.08.28 중국에게서 간도 되찾는 다섯가지 방법은
  28. 2011.08.27 [도서] 그들이 온 이후, '학살'의 대명사 나치, 그 원조는 미국이었다
  29. 2011.08.19 지도로보는 통일한국 패권
  30. 2011.08.17 서역을 정벌한 한국의 징기스칸, 고선지장군
2016. 9. 29. 01:29

치우천황(chiwoo) Damul Korea2016. 9. 29. 01:29

 

중화민족은 허구이다.

옛날,타민족의 지배를 받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국경인 만리장성 너머 이민족의 땅인 곳에서 요하문명이 1984년 이후로 발견이 되자, 황하문명이 아시아 최초라고 주장하던 중국이 요하공정을 시작으로 중국의 시조인 황제가 요하문명이 자기역사의 발원지라고 주장하고 현재의 영토에 남겨진 모든 유적,유물과 역사가 피지배였음에도 불고하고 역으로 자기들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나서는것이 현재 중국 공산당의 중화사상의 핵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존재하지 않는 민족인 중화민족(?=미국인은 있지만 미국민족이란것이 말이 안되듯)의 굴기를 위해 치우천황을 중국의 역사에 편입하다.

현재의 냄비근성및 소극적인 역사관은 일제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만주 철도부설권및 조선의 영토를 불법적으로 거래함으로 시작된 것이다.

근시안적인 자세로 결코 우리의 상고사를 잊지말자.

요하문명은, 우리의 발원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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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9. 01:17

고대 한류를 밝힌다. Damul Korea2016. 9. 29. 01:17

삼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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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고구려 역사 편입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에서 고구려 역사서 및 논문을 앞에 중국 고구려 연구... 등등으로 붙여서 나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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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19. 01:33

2020년 한국이 중국멸망 시킨다 Damul Korea2016. 9. 19. 01:33

http://aspen.tistory.com/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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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19. 00:42

요하문명 한국의 시초 Damul Korea2016. 9. 19. 00:42

대한민국 고대사 환국

 

 

https://www.freetibe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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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17. 17:07

발해를 꿈꾸며 Damul Korea2016. 9. 17. 17:07

평화오딧세이

 

 

 

 

 

 

[JTBC] 2016 평화 오디세이 발해를 꿈꾸며.E01.160914.720p-NEXT.mp4.tor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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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日쪽으로 2배 넓어진 대륙붕' 유엔 제출…한·중·일 '대륙붕 쟁탈전'

 

오키나와 해구까지 확장
동중국해 대륙붕 놓고
일본 등과 외교전 예고

정부는 27일 우리나라의 대륙붕 경계선이 오키나와 해구까지 이어져 있다는 ‘대륙붕 한계 정식정보’를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제출했다. 이는 2009년 제출했던 예비정보에 비해 우리의 외측 한계선이 일본 쪽으로 38~125㎞ 더 이동한 것으로 한·중·일 3국 간 동중국해 대륙붕을 둘러싸고 외교전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이날 “우리의 권리가 미치는 동중국해 대륙붕이 200해리 너머 일정부분까지 연장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식정보를 CLCS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제출한 정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륙붕 외측한계는 위도(북위) 27.27~30.37도, 경도(동경) 127.35~129.11도 사이로, 3년 전 예비정보 제출 당시에 비해 면적이 2배 이상 넓어졌다. 특히 이 한계선이 일본의 영해(12해리)에서 불과 5해리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정부는 국제법 규정에 따라 대륙붕 권리 주장이 가능한 최대범위인 ‘우리 영해기선으로부터 350해리 내에서 대륙 사면의 끝(FOS)+60해리’ 공식을 적용해 한계선을 설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국토해양부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국립해양조사원 등 관계기관 및 민간 전문가들과 협의를 거쳐 예비정보 제출 때보다 대륙붕 한계가 더 넓다는 사실을 확인함에 따라 새로운 경계를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안국은 대륙붕에 대해 탐사 및 해저와 하층토의 광물·무생물자원·생물자원 등 천연자원 개발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문제는 동중국해 대륙붕이 한·중·일 3국으로부터의 거리가 400해리를 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아시아의 걸프’라 불릴 정도로 풍부한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돼 이를 둘러싸고 3국 간 치열한 쟁탈전이 불가피하다.

앞서 중국 역시 지난 14일 정식문서를 제출하면서 자국의 대륙붕 한계를 과거보다 확대했다. 특히 중국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까지 자국 영토로 표시해 영토분쟁의 성격까지 더했다.

정부 당국자는 정식정보 제출에 대해 “우리나라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대륙붕에 대한 선언적 의미가 크다”며 “해당 해역의 경계획정은 해당국 간 회담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CLCS는 특정국의 대륙붕 경계 확정 요구가 있으면 이를 논의해 결론을 낸 뒤 관련국에 권고한다. 그러나 이 권고는 구속력을 갖지는 못하며 대륙붕 획정은 관련국 사이의 회담을 통해 최종적으로 정해진다.

한·중 양국의 대륙붕이 오키나와 해구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일본은 “해양권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해 온 만큼 이번에도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중국과는 양국의 대륙붕이 오키나와 해구까지 이어졌다는 ‘총론’에서는 이견이 크지 않은 만큼 일단 한·중 공조를 통해 일본을 설득하고 한·중 간 차이는 그 뒤에 해소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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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3. 00:09

새로운 변화로 가는 대한민국 Damul Korea2012. 12. 3. 00:09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위아래로는 남과 북, 옆으로는 동과서로 나뉘어 갈라져 왔다.

태초에 우리 역사이래로 이씨조선을 제외하고는 이전까지는 원래는 없던 지극히 

정치적으로 계산된 인위적인 조장된 이념으로 정권유지의 도구로써 우리는 정치에 기생하는

입바르지 못한 권력의 양아치 언론으로부터 세뇌되고 길들여 왔다.

낡은 기득권을 고집하는 세력과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신흥세력,

소수 특권층의 사리사욕 낡은 구태정치에서 새로운 공명정대한 정치개혁을 위해

그리고 한류와 같은 대국으로 가기위해 반드시 넘어야할 이나라의 정치쇄신을 위해 우리는

기존 선입관을 깨고 잃어버린 민족의 정기와 호연지기로 통일대국이 되는 그날을 위해

살아있을때 이룩할수 있는 꿈이 있기에 사사로움을 뛰어 넘어서 앞으로 나아가 과거 대륙의 기상으로

말달렸던 기마민족의 위상을 다시 떨치기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모습을 되찾고자 한다.



언제까지 남과북,동과서 적대적으로만 지낼것인가,,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새로운 정치판을 짜자!

되찾아야할 우리의 숙명 잃어버린 우리의 다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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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물 2012.12.03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물코리아는 문재인을 지지선언 합니다.

2012. 6. 8. 00:14

中, 역사 침탈 중대위기 Damul Korea2012. 6. 8. 00:14

만리장성은 중국의 국경,만리장성의 영역을 허위로 늘려 안시성,평양까지 넘보다 

The Great Wall of China is their border.





평양까지 침범한 중국의 동북공정



NGC 한국판의 만리장성


“中, 역사 침탈로 영토 확장 노림수… 한반도에 중대 위협”


[세계일보]중국의 ‘만리장성공정’에 국내 역사학계가 발칵 뒤집히고 있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것으로 만들려는 중국의 의도가 담긴 까닭이다. ‘만리장성이 고구려 영역에까지 이어졌다’는 발표가 동북공정을 추진했던 사회과학원이 아닌 중국 정부기관인 국가문물국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역사학계에서는 “한국 고대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려는 동북공정이 다시 시작됐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의 성이 돼버린 고구려 성

중국이 만리장성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고구려와 발해의 성은 ‘중국의 것’으로 변할 위기에 처했다. 고구려와 발해가 고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동북공정에 담긴 논리의 연장이다.

이번에 중국이 만리장성에 포함한 지린성에는 많은 옛 고구려 산성 유적지가 남아 있다. 중국이 2009년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못박은 랴오닝성 단둥의 박작성(泊灼城·중국명 후산성)도 고구려 성이다. 중국 국가문물국이 연장된 만리장성에 어떤 고구려성을 포함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고구려의 핵심지역을 이룬 환도산성·오녀산성·국내성도 만리장성의 영역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환도산성은 지린성 즙안현에 있는 고구려 성으로, 2대 유리왕이 기원후 3년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면서 국내성에서 가까운 산에 축조한 산성이다. 원래 위나암성(尉那巖城)으로 불렸으며, 외침에 대적한 한민족의 기개가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있는 발해의 유적지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도 예외는 아니다. 이 산성은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건국의 근거지로 삼은 동모산(東牟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중국은 이미 이 산성을 2006년 6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해 표석까지 세워 놓았다.

전문가들은 이미 중국이 고구려·발해사에 대한 야심을 표명한 이상 명백한 의도를 파악해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방치된 국내성터.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은 지금은 성곽 흔적만 남아 있을 뿐으로, 현대식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동북공정 다시 시작됐다”

국내 역사학계는 “중국이 역사왜곡을 재개했다”고 분석한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조법종 교수는 7일 “중국 발표 내용의 핵심은 만리장성의 개념을 역사적으로는 전(全)시대로, 지리적으로는 중국 영토 전역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라며 “중국 역사 속의 성벽이나 거점을 무조건 ‘만리장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의 역사공간을 최대한 확대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또 “이 같은 개념 재정립이 우리나라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원대 역사학과 남의현 교수는 “중국이 티베트 문제와 신장위구르·네이멍구·만주 등 변경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와 발해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날 “지린·헤이룽장성 지역은 고구려와 발해의 영역이었던 곳으로, 이들이 남긴 성곽 유적이 산재한다”며 “이들 유적이 장성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다면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것”이라는 검토 의견을 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또 “현재까지 고구려·발해 유적이 역대 장성의 조사내용 안에 포함되어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면서도 “중국의 ‘장성자원조사’ 사업은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일견 동북공정의 사업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서는 단정할 수 없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현재 국가문물국의 발표와 관련된 자료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란 동북공정 등 중국의 역사왜곡 프로젝트의 기본 논리로, 현재 중국 땅에 있거나 과거 또는 현재 중국 영토에 존재했던 모든 민족은 중국인에 속하며, 그들의 역사 또한 중국의 역사라는 주장이다. 이 경우 한민족의 역사는 중국사로 뒤바뀐다.

◆남북통일시대를 겨냥한 ‘만리장성 공정’ 

이번 발표가 한반도 통일 이후를 고려한 포석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정치학과 임형진 교수는 “중국은 모든 역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면서 “이번 만리장성 영역의 확장 이면에 있는 정치적 의도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점점 중국에 예속되고 있고, 이런 경향이 심화할 경우 고구려·발해가 실재했던 만주 땅 이야기를 거론하기도 어렵다”면서 “중국은 이번 발표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권리 주장과 옛 만주 지역의 한민족 역사마저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남북한 통일 문제와 관련해 그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한국 고대사에 존재했던 나라나 역사·문화를 자국의 일부로 만들려는 의도는 결국 북한에 대한 집착을 역사적 근거를 통해 보여준 것”이라며 “이 경우 통일은 더욱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북한 경제가 중국이 아니라 한국에 의존할 수 있도록 남북한 교류면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도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12일 중국 장성 관련 국내 전문가 긴급 간담회를 개최해 중국 발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신동주·박영준 기자 ranger@segye.com



제대로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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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anseongmin.me/698


Dr. Hwang discovered old historical documents demonstrate that Daemado(日 tsushima) island is Korean Territory,not Japanese!!Return our lost land ,the operation history during Japanese imperialism! Gando,Dokdo..


황백현 박사, '東萊府誌'서 기록 찾아.."대마도 역사왜곡 시도"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대마도 옛 도주(島主)들 가문인 '종씨(宗氏)'의 조상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송씨(宋氏)'라는 문헌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1일 대마도 관련 언어 전문가인 황백현 박사에 따르면 대마시가 초대 대마도주로 추앙되던 종중상(宗重尙)에 대한 관광안내판 내용을 바꾼 점을 이상하게 여겨 문헌조사를 하던중 '동래부지'(東萊府誌, 1740년 조선 영조16년 박사창(朴師昌) 편찬)에서 대마도주 종씨는 원래 한국의 송씨라는 기록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동래부지의 대마도항목에는 '대마주는 옛적 계림(鷄林, 신라)에 예속돼 있었으나 어느 때 왜인이 점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중략) 세상에 전하기를 도주종씨(島主宗氏)는 그 선조가 원래 우리나라 송씨로, 대마도에 들어가서 성을 종씨로 바꾸고 대대로 도주가 됐다'고 기록돼 있다.

또 동래정씨 문중 시조 묘역이 소재한 화지산(和池山, 부산 부산진구 소재) 항목에 '구전(舊傳)에 대마도주 종씨의 조상도 이 산에서 장사 지냈다 하나 지금은 그 곳을 알 수 없다. 술사(術士)가 말하기를 정씨의 자손은 큰 벼슬을 맡은 자가 많고, 종씨 역시 대대로 도주(島主, 대마도주)를 세습하니 그 귀함이 비슷하다'고 기록돼 있다.

황 박사는 이 같은 기록으로 미뤄 대마도주들은 '일본인 종씨'가 아니라 '한국인 송씨'이며 초대 대마도주의 묘역도 대마도가 아닌 부산 땅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유명 관광지인 이즈하라시 카마자카 전망대 안내판에는 종중상이 초대 도주라고 오랫동안 적시돼 있었으나 지난해 초대 도주가 종중상이 아니라는 내용이 적힌 새로운 안내판이 설치됐다는 것이다.

당초 안내판에는 '아비류 군대를 토벌한 종중상은 대마도 초대 도주 자리를 차지했다'고 적시돼 있었으나 새로 세워진 안내판에는 '1246년 쓰시마 통치자 아비류를 여기서 격전 끝에 무너뜨려 종씨가 쓰시마 도주의 자리에 올랐다는 역사가 오랫동안 전해져 왔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역사 연구로 판명되었다'고 왜곡됐다는 것이다.

종중상의 무덤이 대마도에 없는 것은 객지인이 대마도 도주가 되는 등 출세했고 당시 풍속에 따라 사망후 시신을 고향 선산인 부산 화지산에 묘를 썼기때문이라고 황 박사는 주장하고 있다.

종씨 대마도주는 초대 종중상에서부터 일본 메이지 정권에게 관인을 반납한 마지막 태수인 34대 종의달까지 448년간 대마도를 통치했다. 

황 박사는 이 같은 내용과 대마도가 마한ㆍ신라ㆍ고려ㆍ조선의 영토였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문헌을 정리한 단행본(대마도 통치사)을 곧 발간할 예정이다.

황 박사는 본적을 울릉군 독도리에 옮기고 청원을 통해 '독도리' 신설과 '우편번호'를 부여토록 하는 등 독도의 우리땅 확인사업에 앞장서 온 인물로 현재 대마도역사문화관광업체인 ㈜발해투어 대표를 맡고 있다. <사진 있음>

ljm70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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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28. 04:19

동중국은 백제의 일부였다 Damul Korea2012. 5. 28.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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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ntu.equitation-japan.com/asp/oakley.php BlogIcon ���`����` �ᥬ�� 2013.04.14 0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지원, 아주 좋아, http://ntu.anief.org/iscrizioni/hogan.php hogan scarpe.

2012. 5. 27. 18:29

TimeLine Map of Korea Damul Korea2012. 5. 27. 18:29


TimeLine Map of Korea,History of Korea


끌어올리기:


인터넷에 꼭꼭 감춰져 있던 좋은자료가 있었네요...한국의 역사적 타임라인별로 영토를 알수 있는 타임맵 입니다..

국가차원에서 만든것으로 보이는데 대외의 눈치 때문인지 정작 홈페이지에는 자료가 없고 원본파일이 외국싸이트에 링크되어 있는지라 소중한 자료보관 (?) 차원에서 대한민국 홍보에 효과적일 듯 하여 Sothink SWF Decompiler 로 추출했습니다.. 


제작:  국사편찬 위원회 ( National Institue of Korean History ) & 세계전자문화지도협의회(ECAI:Electronic Cultural Atlas Initiative)



이 포스팅에 대한 정보 출처:http://xguru.net/424 (자세한 정보는 이곳에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소스코드 퍼가기:

<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5,0,0,0"

 WIDTH=700 HEIGHT=400>

 <PARAM NAME=movie VALUE="http://www.ecai.org/Area/AreaTeamExamples/Korea/animation.swf"> <PARAM NAME=quality VALUE=high> <PARAM NAME=bgcolor VALUE=#000000> <EMBED src="animation.swf" quality=high bgcolor=#000000  WIDTH=100% HEIGHT=1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PLUGINSPAGE="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EMBED>

</OBJECT>

원본파일 퍼가기:


TimeMapOfKoreaTerritory.7z


티스토리 로컬카피 업로드 팁: 

자신의 블로그에 외부컨텐츠,멀티미디어 파일로 http://www.ecai.org/Area/AreaTeamExamples/Korea/animation.swf을 링크걸어서 플래시를 추가합니다.

위 7z을 풀어 swf첨부파일을 본문첨부 파일로 본문에 삽입후 나타나는 경로인 cfile어쩌구 저쩌구 swf 를 자신의 풀경로에 맞게 수정합니다.


<PARAM NAME=movie VALUE="http://krkim.net/attachment/cfile9.uf@140A75424FC1FB5B0E098C.swf"> 

이 cfile9.uf@140A75424FC1FB5B0E098C.swf 부분은 본문에 포함된 파일태그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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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독도에 대한 반응:: World React about DokDo of Korea










출처:http://www.dogdrip.com/bbs/board.php?bo_table=dogdrip&wr_id=107503&page=4&best=1




About THIS SONG(CopyLeft,Free)


Download Uri-nara's 독도는 우리의 땅이다(Dokdo is Our Territory).MP3



Lyrics

글.곡 : 백자 
노래 : 백자 
편곡 : 이광석, 백자 
믹싱 : 이광석 
일렉기타 : 백자


1. 40년 이땅을 약탈한 너희 
섬나라 쪽바리들 
여전히 한마디 사과도 하지않은 채 
또 이땅을 넘보느냐 
아직도 가슴속 단단한 원한이 
두주먹 끝에 울고있어 
이제는 어제의 우리가 아니다 
침략의 무리 왜놈들아 

[후렴] 독도는 우리의 땅이다 
수천년 이어온 우리의 역사다 
너희가 뭐라고 지껄여 댄대도 
독도는 우리 우리의 땅 
또다시 대동아 공영을 꿈꾸는 
전쟁에 미친 쪽바리야 
한번 붙을테면 그래 붙어보자 
끝장을 내줄테다 
쪽바리들아! 

2. 백년전 이땅을 침략한 너희 
섬나라 쪽바리들 
여전히 너희를 따르는 친일파 후손들 
그런놈들 그리우냐 
아직도 일장기 가슴에 품고사는 
얼빠진 놈들 있긴 있어 
하지만 어제의 우리가 아니다 
너희와 함께 싹 쓸어주마 [후렴] 


http://www.cix.co.kr/kr/lyrics_show.html?Nation=&SingerUnit=&Singer=13745&Album=1&No=199274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기자

 

일본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 통과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노래패 우리나라가 '독도는 우리의 땅이다'란 곡을 인터넷에서 발표해 화제다.

"40년 이 땅을 약탈한 너희 섬나라 쪽바리들/여전히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또 이 땅을 넘보느냐"로 시작하는 이 곡은 "또다시 대동아 공영을 꿈꾸는 전쟁에 미친

쪽바리야/한번 붙을 테면 그래 붙어보자 끝장을 내줄 테다 쪽바리들아"란 강한 비판조의 후렴구로 끝을 맺는다.

 

현재 우리나라 홈페이지(www.uni-nara.com)에서 들을 수 있는 이 곡은 강한 어조에 어울리는 록비트의 웅장한 노래로 우리나라의 멤버인 백자가 작사ㆍ작곡하고 노래했다.

우리나라는 "이 노래가 독도를 지키려는 많은 우리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1999년 결성된 우리나라는 여중생 촛불시위, 탄핵무효 촛불시위 등과 인터넷 음악활동을 통해 사회비판적인 곡을 많이 불러 온 혼성 보컬그룹으로 19일부터 부산, 서울, 광주를

돌며 투어 콘서트를 마련한다.

 

'독도는 우리의 땅이다' 저작권 공지입니다!!!

이미 저희들이 mp3로 노래의 보급을 위해 풀어놓은 것이니

 

마음대로 퍼가셔서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올려주셔도 됩니다.(가능하면 출처는 기재해주시고요...^^)

다만, 상업적인 용도로 이용하고자 하실때는(예, 핸드폰컬러링 등....)저희측에 연락을 하셔야 합니다.

무단으로 상업적으로 이용하시면 안됩니다!!!고맙습니다 ^^

 

우리나라(02)333-5905 지정환 (017)348-0217


출처:http://www.che.co.kr/dokdo.php

http://community.freechal.com/ComService/Activity/PDS/CsPDSContent.asp?GrpId=1464199&ObjSeq=7&DocId=28143152

http://www.imdj.net/forum.php?mod=viewthread&action=printable&tid=15501



Dokdo Flash Mob 2012 at Seoul Station in Korea.



http://videostomp3.fancytuning.com/video/CZABj9WeFbY/%EB%8F%85%EB%8F%84%EB%8A%94%EC%9A%B0%EB%A6%AC%EB%95%85%20%ED%94%8C%EB%9E%98%EC%8B%9C%EB%AA%B9(Dokdo%20is%20Korea%20Land)%2020120225%20%EC%84%9C%EC%9A%B8%EC%97%AD%ED%8E%B8.html


Download 독도걸스(DokdoGirls) MP3

http://dl.dbank.com/c0z2zfqdm4



독도관련 노래모음(Other Songs about Dokdo)

http://blog.daum.net/loveltth/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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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카자흐스탄 샤크족(주작)의 관계


오늘날 케레이트 부리야트 탕구트 매르키트 등의 부족 이름에서 12 한국의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이트’나 ‘야트’ ‘트’ ‘구트’ 등은 복수개념의 우리말 ‘들’이란 뜻이며 케레이의 어원은 ‘겨레 코리 고려’이다. 부리족은 비리 부여 비류로 비리국 후손임을 알 수 있으며 탕은 단족 동족, 매르키족은 맥 말갈 만주족 마자르족, 객현한국의 게쿤이 오늘날 키르키즈족이다. 

우리는 12 한국의 영역과 너무나 흡사한 징기스칸의 정벌지역과 동서로 유라시아를 아우른 케레이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케레이족을 ‘克烈(극렬)’로 표기하고 ‘커리예’로 발음한다. 한국식 발음은 ‘겨레’이며 케레이를 한자로 표기한 또 다른 음차문자가 ‘고려’다. 따라서 비교음운학으로 케레이와 고려는 같은 민족임이 드러난다. 

카자흐스탄 역사에서 케레이는 몽골초원에 오기 전, 9~10세기경에는 만주에서 조복(組卜)연맹을 구성하고 요나라를 상대로 격렬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는 발해유민들이 독립운동을 한 시기와 일치한다.

크게보기



티베트의 고대 장당문명도 고대 한국사와 연관이 깊다. 장당문화의 주인은 이족(夷族)이다. 지도자는 아바타로 하늘에서 내려온 신을 의미하고 12연방 국가이며 수도는 샴발라(강당지역)로 샤크족이다. 적석목곽분과 석조신전으로 발전되는 티베트역사는 12 연방 환국의 안파견과 수도 아사달, 장당경, 적석목곽분과 석실고분으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와 일치한다. 또한 고조선의 마한 진한 변한이 마칸 변캉 진으로 존재한다. 사크족을 중국은 ‘석’ 러시아는 ‘스키프’ 인도에서는 ‘사카’라 하는데 환단고기의 ‘색’족과 동일한 민족이라 생각된다.


http://m.kookhaknews.com/articleView.html?idxno=26249&menu=3




깃발을 든 기마병

동북아재단, '카자흐스탄의 바위그림'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이 카자흐스탄 지역 암각화(바위그림)에 대한 조사보고서 '카자흐스탄의 바위그림'을 최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재단이 2009년 카자흐스탄 교육과학부 고고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카자흐스탄 동남부 지역에 분포하는 총 13개 바위그림 유적지를 조사한 성과를 정리한 결과물이다. 

재단은 "카자흐스탄이라는 문화공간에서 석기시대 이래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생멸한 문화상들을 바위그림이라는 조형언어를 통하여 엿볼 수 있다"면서 "이번 암각화 조사작업을 통해 한반도 선사와 고대문화와 중앙유라시아 문화 사이에 친연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투용 도끼를 든 샤크족 전사

일례로 이 지역 깃발을 든 기마병이나 기마전투 장면이 담긴 암각화는 튜르크(돌궐)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이는 고구려 초기 고분벽화 속 기마병 연구의 비교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스키타이-시베리아 동물 양식으로 그린 독수리나 산양 등의 동물 형상이나 사크(塞)족 전사, 그리고 머리에 사슴이나 산양 뿔 장식을 한 말 등은 당시의 문화상을 복원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 민족문화와 조형예술의 계통성을 밝히는 데도 중요하다고 재단은 덧붙였다. 


http://blog.naver.com/busang68/80158495597

 

[★★카자흐스탄의 역사적 트렌드와 우리와의 협력 방안 ★★ ] 스마트철강 소셜 모바일 박희정

스마트철강 소셜 모바일 박희정(봉강,형강,강판,강관판매)의 카자흐스탄이야기,..

(카자흐스탄에 있는 홍범도 장군 동상)

카자흐스탄의 역사적 트렌드와 우리와의 협력 방안

앞의 장에서 보았듯이 고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에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교류가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찬란한 역사와 문화, 국력을 자랑하던 시기에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국가들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었다. 그 이유는 중앙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해 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무역을 하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국 한나라의 한무제가 훈족과 전쟁을 벌인 실질적인 이유도 바로 이 실크로드를 장악하기 위한 경제전쟁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21세기를 사는 현대에서 변함이 없다. 따라서 한국이 동북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긴밀한 연결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연결의 고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간단하게 요약하여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 첫째: 한국과 카자흐스탄간의 고대사의 공통점을 찾아내서 각 국가의 국정역사 교과서에

서 언급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 해서 역사적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 둘째: 투르크 계 민족 간이 이루어지고 있는 범 투르크 경제공동체의 일원으로 참가 한다.

- 셋째: 범 투르크주의를 동북아시아 지역까지 확대함으로써 서방국가들로부터의 경제적,

군사적 실익을 획득하는 외교전략을 수립한다.

1. 첫째: 공동역사교과서의 출판 문제

그림1) 신 실크로드 경제권 (예상도)



현재까지도 한국의 사학계는 아직도 국익과 역사의 해석을 제대로 일치시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새로이 발견되는 사실에 대해서도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진정한 목적은 과거의 일을 단순히 밝혀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현대적 관점에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해석 할 수 있느냐를 찾는데 더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예로 한족 중심의 국가인 중국 (중공)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접수하는 과정에서 그 광활한 영토를 전부 자신의 영역으로 두고자 정치적 정통성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만든 한족 중심의 역사 교과서와는 다른 교과서를 쓰고 있다. 장개석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로부터 독립하여 한족의 독자적 국가의 건설을 추진하기 위하여 한족 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기술 하였기 때문에 북방민족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청나라에 대해서는 과서 명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정성공[1]이 대만으로 피난 가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하는 등, 반청사관을 가지고 있는 반면, 중국 (중공)의 역사교과서는 현재의 영토를 영구히 차지하기 위해서 모든 북방민족의 역사도 자신들의 역사인양 탈바꿈하여 중국사에 편입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북방민족역사의 주인인 북방민족에 대한 경제발전, 교육, 정치참여의 기회를 제한 함으로써 이들을 한족화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도 마찬가지인데 북방4도와 독도, 센카쿠 열도를 차지하기 위해서 각종 외교 채널을 사용해서 한국이나 중국 보다 먼저 발 빠르게 세계에 일본인들이 이 지역을 역사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동해일본해표기 등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많은 재야사학자들이나 민간단체들이 독도 지키기 캠페인이나, 간도 수복문제를 언급하는 반면, 한국의 정부기관이나 국정역사교과서 출판기관은 실질적인 외교정책이나 대책을 수립하기 보다는 형식적인 수준의 1회성 또는 한국인끼리 모여서 상징적인 구호만 외치는 우리들만의 리그를 하는 것이 전부인 실정이다. 실정이 이러하다 보니 중국 정부도 마음대로 한국의 고대사를 자신의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고 이를 바라 보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아무리 분노하고 시정을 요구해도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제대로 된 대책조차 수립이 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더 나아가 조선족이나 고려인 출신의 교수들 중에서도 동북공정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배출이 되고 유창한 현지 언어를 이용해서 해당 국가의 대학생들에게 한국을 중국의 위성국가인 양 가르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람들이 버젓이 한국 정부와 교류를 하며 각종 세미나나 학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한국에 대한 바른 인식이 외국인들에게 알려질 리 만무하다. 앞으로라도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대국으로의 발전을 원한다면 먼저 중국중심의 사관으로부터 벗어나서 우리가 전략적으로 외교관계를 맺어야 하는 북방민족 국가들이 과거 어떻게 우리나라를 묘사했나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아직도 한국의 학계는 중국인 (한족)이 쓴 역사책이 아니면 참고자료로서의 가치를 그다지 두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북방민족의 역사와 한민족 간의 공통점을 찾아서 이를 공유하게 된다면 먼 훗날 대 알타이 경제공동체를 설립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고 그 규모는 미국이나 유럽을 능가하는 엄청난 경제권이 될 것이다. (그림1 참조)

2. 둘째: 범 투르크 경제공동체의 참여 문제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부터 알타이-투르크 민족의 찬란했던 번영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되는데, (오스만제국의 약화, 청나라의 약화) 그 이유는 과거 유럽이나 중국이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무역을 통한 경제적 발전이 필요하였는데 이 무역을 위한 통로인 실크로드를 북방민족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북방민족과의 중계무역에 의존해서 경제발전을 해야만 하였다. 하지만 신대륙의 발견은 유럽으로 하여금 더 이상 오스만 투르크나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 무역에 의존해서 무역을 할 필요성을 없앴을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에 대규모적인 식민지를 건설함으로써 이 지역의 자원과 노동력을 무료로 착취함으로써 유럽의 경제가 알타이-투르크 경제를 앞서게 되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유럽의 식민지가 되었던 국가들은 독립을 쟁취하였고 유럽이 강제적으로 착취하던 지하자원은 이제 이들 독립국가의 주요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를 당했던 제3세계국가들이 자신들을 지배했던 국가들을 위협할 수 있는 외교적 무기로 발전하였다. 1차 석유파동과 (1973) 2차 석유파동이 (1978) 그러했고 현재 중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자원민족주의의 경향 또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러한 배타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자원부국들과 협력하여 원활한 자원외교를 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우리가 ① 서방선진국들과는 다르다는 점과 ② 그들과 함께 상생의 경제발전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시 할 수 있어야 이들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은 우리와 역사적 연계성이 많으므로 다른 지역보다 훨씬 접근이 쉬울 것으로 예상이 된다. 우리가 이들과 같은 형제민족이고 과거 함께 동고동락을 했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독립 이후 중앙아시아민족들의 정체성 수립의 과정에 우리가 참여 할 수만 있다면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처럼 강력한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없다 하더라도 연계가 가능할 것이다.

그림2) ECO 가맹국1) ECO 가맹국의 경제력 분석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File:Economic_Cooperation_map.svg

1991년도에 소비에트가 붕괴된 이후로 터키는 ECO[2] (Economic Cooperation Organization)를 이용해서 중앙아시아 지역에 적극적인 외교와 경제원조를 해왔다. 카자흐스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람스토르 (Рамстор)라는 대형 슈퍼마켙도 터키자본이 건설한 것이며 이외에 카자흐스탄의 건설, 물류, 연예사업, 그 외 많은 중소규모의 개인사업체들이 터키인들에 의해서 운영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립 이후 급격히 빠져나간 기술자, 의료관계 인원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터키 정부에서는 병원과 학교를 수립하여 이 지역에 투르크 계 자본의 유입과 터키어, 중앙아시아 자국의 언어 보급에 힘쓰고 있다. 이처럼 터키인들이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 초기에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을 도와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터키인들의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상당하다. 따라서 우리도 서방선진국만큼 자금력을 동원 할 수 없다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이러한 정책수립의 근간에는 현재 터키를 중심으로 한 범 투르크주의[3]운동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림3) 투르크 계 민족의 분포 그림4) 범 투르크 대회 (터키, 앙카라)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File:Map-Turkist_anguages.png

이들의 범 투르크주의운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당히 구체적인 것으로 이미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은 이미 러시아어의 사용을 거의 중단했다. 다만, 카자흐스탄의 경우는 독립초기 카자흐인의 인구가 ① 전체 인구의 50%를 차지하지 못했던 문제점과, ② 대부분의 지식인, 기술자들이 유럽계 사람들이었던 관계로 본격적인 카자흐민족주의를 주장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2009년 인구통계조사에서 카자흐인들이 전체인구의 53%를 넘은 것으로 나타나 머지않아 카자흐스탄에서도 자원민족주의 운동과 함께 카자흐어 사용의 확대, 러시아어 사용의 축소, 이슬람 부흥운동이 더욱 더 강해질 것으로 추측이 된다.

범 투르크주의가 긍정적인 미래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영토 내에 범 투르크주의의 확산의 우려, 중국의 신장 위그루 지역 독립 가능성, 중앙아시아 지역에 극단적인 이슬람의 확산 가능성 등등의 이유로 범 투르크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사상이 본격적으로 확산이 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지역이 아직도 경제가 제대로 발전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청사진을 우리 대한민국이 제시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문제는 일시에 해소가 될 것이며 중앙아시아 민족들도 한국이 비록 이슬람 국가는 아니다 하더라도 범-투르크 경제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 줄 것으로 기대 된다. 특히 이러한 제안을 형제민족이자 식민지를 당하고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이 먼저 제시한다면 그들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카자흐스탄 경제발전의 초기 모델을 한국의 발전모델에서 찾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카자흐스탄은 한국의 성장모델에 대해서 흥미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따라서 추상적인 개념만은 아닌 것이다.

3. 셋째: 범 투르크주의의 확대와 서방국가로부터의 국익확보문제

그림5) 유라시아횡단철도 (기타 세부철도 생략)



상기의 지도는 현재 연결이 되어 있는 TSR (Trans-Siberian Railway)TEL (Trans-Eurasia Logistics) 그리고 TAR (Trans-Asian Railway)를 표시한 것이다. 앞으로 중앙아시아는 단순히 자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미국과 서유럽 (EU)이 계속 세계경제를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 반드시 장악해야 하는 중요한 중계 무역지역이다. 이미 아시아국가들은 전 세계에 주요 생필품 및 가공품을 수출하는 주도국가이자, 대규모 소비국가이다. 따라서 아시아 지역으로 수입, 수출이 되는 물량은 이미 유럽이나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물류 망을 장악하는 국가가 21세기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는데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기 쉬운 여건을 가진 국가들이 미국이 차세대 경쟁대상 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 두 국가는 SCO가맹국으로서 서방국가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이나, 서방국가들이 전 세계물류를 주도할 수 있는 대 유라시아 물류 망을 이들에게 넘겨 줄리 만무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수립하여 러시아나 중국이 세계 제1의 물류 망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다른 대안을 수립할 것이다. 즉 러시아나 중국을 거치지 않는 제3의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횡단철도를 건설할 가능성인 것이다. 실질적으로 TSR 같은 경우는 러시아가 자국의 자원이나 물류를 보다 더 원활하게 유통시키기 위해서 개?보수 중에 있으며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거대 물류 망을 구축하기 위한 야심 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또한 TEL 경우에는 러시아와 독일이 합자기업의 형식으로 Deutsche Bahn 러시아의 RZD사가 자본을 투자하여 2008 10 6일에 이미 독일의 함부르크 (Hamburg)에서 중국의 시앙탄 (Xiangtan)까지 선로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철도는 각각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권 하에 있는 철도사업계획으로서 서방국가에서는 그리 달가워할만한 사업계획은 아니다. 이에 따라 이에 대한 대안철도사업으로서 TAR 제안되고 있다. TAR UNESCAP (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 제안해서 건설 중인 철도사업계획으로 1960년대에 수립이 되었다. 철도는 크게 3개의 노선으로 구별이 되는데 북쪽선 (Northern Corridor) 독일, 폴란드, 벨로루시,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 한국으로 이어지는 선이고, 남쪽선 (Southern Corridor) 터키, 이란, 파키스탄, 인디아, 방글라데시, 미얀마, 태국, 중국의 운남성,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연결된다. 남북선 (North-South Corridor) 핀란드,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이란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하지만 철도사업에는 장애물이 있는데 북쪽선의 경우는 ?북한 문제가 해결 되지 않은 관계로 철도가 블라디보스톡까지 밖에 연결을 없다는 단점이 있고 나머지 남쪽선이나 남북선의 경우는 이란이 미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관계로 실현가능성이 낮다. 따라서 가장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라인은 북쪽선인데 비록 한국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물류 운송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러시아와 중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라도 서방세계에서는 반드시 개발해야 철도 사업이기도 하다.

그림6) 일본대교 (씨메이)그림7) 씨메이의과대학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Semey_Bridge.jpg

출처: http://aboutkazakhstan.com/semey-kazakhstan-city.shtml

일본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계획을 착실하게 진행해 왔는데 일본은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와 알마티 간의 원활한 교류를 촉진시키지 위한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하고 있으며, 과거 소비에트 시절 핵실험 장소였던 씨메이에 의료진 파견, 교량을 건설 하는 등 착실히 미래를 준비해 나가고 있다. 씨메이를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이 지역이 동쪽으로는 중국의 우루무치, 북쪽으로는 러시아의 노보시비르스크, 남쪽으로는 알마티, 서쪽으로는 수도인 아스타나와 연결되는 중간지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은 알마티와 아스타나를 연결하는 남북라인과 씨메이와 아스타나를 연결하는 동서라인을 획득하여 차세대에 건설될 수 있는 TAR의 북쪽선, 남쪽선, 남북선을 장악하기 위한 소리 없는 준비를 하고 있다.

2) 카자흐스탄 10 ODA 공여국 (2003~2004) 출처: OECD

순위

국가 (기관)

금액 (100만 달러)

1

일본

137

2

미국

52

3

터키

15

4

독일

14

5

아랍국가들

11

6

스페인

11

7

EU

9

8

이스라엘

3

9

네덜란드

3

10

EBRD

3


또한 일본은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중앙아시아 지역에 엄청난 양의 ODA를 지원하고 있다. 이 덕택에 우즈베키스탄에 입국하는 일본인은 비자가 필요 없이 바로 입국이 가능하며 일본인에게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현지 경찰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일본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자원외교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아쉬운 시절에 이들을 원조하여 인심을 얻은 것이다. 중국도 이에 지지 않고 적극적인 자금원조외교를 추진하고 있는데 2009 4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중국에 방문하였을 때, 중국 정부는 에너지 부문의 투자를 위해 100억 달러를 차관으로 제공하였다.

우리의 자원외교가 현재 미국, 러시아, 중국이 중앙아시아에서 벌이고 있는 석유 및 가스 파이프라인 경쟁에 끼여 들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것 보다는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는 유라시아 물류확보 경쟁에 미리 참여해서 미국과 서방국가들을 설득하고 이들의 지지와 협조 아래 중앙아시아 횡단철도를 구축하고 물류 망을 장악한다면 대한민국은 향후 100년간 먹을 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재원을 확보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비호 아래, 러시아나 중국의 영향력에서 보다 더 자유로운 국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골드 러쉬가 있었던 당시,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은 금을 캔 광부가 아닌 광부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팔았던 상인들이라는 것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1] 정성공 (鄭成功, 1624~1662): 청나라에 저항하여 명나라 부흥 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일본, 나가사키현 히라도에서 출생하였으며 주원장의 후손인 당왕 (唐王) 융무제 (隆武帝)로부터 주()씨 성을 하사 받아 국성야 (國姓爺) 라고도 알려져 있다.

[2] ECO 1985년 터키, 이란, 파키스탄에 의해서 설립된 조직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를 포함한 10개국이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터키, 이란)이 유라시아국가의 경제적 통합과 상호 발전을 위해서 만들었다.

[3] 1804년 타타르의 학자 쿠르사비 (Kursavi)가 주장한 이론으로 이슬람 세계의 근대화와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중앙아시아 민족들이 자신들만의 새로운 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상이었다. 그 후 이 사상은 터키가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있으며 현재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문자통일을 위한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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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14. 23:39

첫나라 고조선, 수도는 어디였나? Damul Korea2012. 5. 14. 23:39

첫나라 고조선, 수도는 어디였나?
The first country of Korean - History of Gojosun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한 단군조선과 이후의 위만조선을 구분하기 위한 명칭이다. 그러나 현세에 이르러 일반적으로 고조선이라는 명칭은 왕검조선과 위만조선을 포괄하는 의미로 쓰이며, 앞의 古는 이성계가 지나족 섬멸을 위해 왕명을 받들어 진군 하던중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역모를 일으키고 이를 정당화하고자 이전시대 까지는 없던 스스로 지나족에게 고개를 숙이고 속국임음 자처하여 건국한 이씨조선과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이때부터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 국가관과 국운이 기울었으며 당정싸움이 오늘날 까지 이어진다.따라서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 오히려 이씨조선이라 불리고 고조선이 조선이라 불리는 것이 맞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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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 고영근, 명성황후의 원수를 베다
[History of Josun,Korea]

Brutally,Japanese Assassins assassinated The Last Empress of Korea illegally at her Palaces ,
Seoul in 1895. So a Korean assassin revenged on them.





http://ko.wikipedia.org/wiki/%EB%AA%85%EC%84%B1%ED%99%A9%ED%9B%84


명성황후 (明成皇后 ; 1851~1895)

  조선 고종의 황후로서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성은 민씨(閔氏)이다. 여주(驪州) 출생으로 증(贈) 영의정 치록(致祿)의 외동딸이다. 9세 때 고아가 되어 본가에서 가난하게 자라다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부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의 추천으로 왕비에 간택 ·책봉되었다. 그러나 금실이 좋지 못했고, 더구나 궁인 이씨에게서 완화군(完和君)이 출생하자 이를 기뻐하는 흥선대원군에 대한 불만과 질투가 폭발하여 흥선대원군 반대파를 규합, 민씨 척족을 정부 요직에 앉히고 세력 기반을 착실히 다져 나갔다.

  점차 고종의 애정도 독점하여, 1871년 원자(元子)를 낳았으나 5일 만에 죽자, 흥선대원군이 진상한 산삼(山蔘) 때문이라고 단정, 더욱 증오심에 불탔다. 1873년 일본에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되어 내외정세가 긴박해지고, 경복궁(景福宮) 중건으로 민생고(民生苦)가 가중되는 등 흥선대원군의 실정(失政)이 계속되자, 그를 탄핵하기 위해 유림(儒林)의 거두 최익현(崔益鉉)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하였다. 사실 명성황후의 배후에는 민승호 등 여흥민씨 삼방파(三房派) 세력을 비롯해 조대비(趙大妃)를 중심으로 한 풍양조씨(豊壤趙氏) 세력, 대원군에게 무시된 대원군 문중 내부의 세력, 그리고 대원군 정책에 반대하는 유림세력 등 노론을 중심으로 하는 반(反)대원군 세력이 있었다. 이들은 대원군이 당쟁을 근절한다는 명분 아래 등용한 남인 중심의 세력과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어 흥선대원군파의 반대 상소와 모든 주장을 배척하고, 고종에게 친정(親政)을 선포하게 하여 민씨의 외척정권이 수립되었다. 결국 대원군파를 숙청하고 쇄국정책을 폐하여 일본과 수교하였다.

  먼저 개화사상가인 박규수(朴珪壽)를 우의정에 등용하고, 대원군 집권 당시 쇄국정책을 담당했던 동래부사 정현덕(鄭顯德)과 부산훈도 안동준(安東晙), 경상도관찰사 김세호(金世鎬)를 차례로 파면·유배했다. 개화를 위해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삼군부(三軍府)를 폐지했으며, 신사유람단과 영선사를 일본과 청에 파견하여 신식무기·공업 등을 학습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조선책략〉의 연미론(聯美論)이 유포되자 1881년 김윤식이 영선사로 청에 갈 때 밀명을 내려 청에 한미수교를 주선해 줄 것을 요청했고, 또한 개화승 이동인(李東仁)을 일본에 보내어 주일청국공사 하여장(何如璋)에게 대미수교의 주선을 요청하기도 했다.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으로 신변이 위태롭게 되자 궁궐을 탈출, 화개동(花開洞) 윤태준(尹泰駿) 집을 거쳐 충주(忠州) ·장호원(長湖院)으로 전전하며 충주목사 민응식(閔應植 ; 1844~?)의 집에서 피신생활을 하던 중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전의 국상(國喪)이 선포되나, 윤태준을 고종에게 밀파하여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하게 하였다. 결국 청의 텐진에 가있던 영선사 김윤식(金允植)을 통하여 청나라 군대의 출동으로 군란이 진압되자 흥선대원군을 청나라로 납치해 가도록 공작하고, 민씨정권을 재수립하였다. 점차 정권을 농단하여 대원군파에 대한 복수에 열중하고, 무당을 궁궐에 끌어들여 굿을 하며 명산대천을 찾아 치성한다는 명목으로 국고를 탕진하는 등, 민씨 일족의 부패상은 극도에 달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으로 민씨 일족이 실각하자 심상훈(沈相薰) 등을 사주(使嗾), 청나라의 개입으로 개화당(開化黨)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일본세력의 침투로 김홍집(金弘集) 등의 친일(親日) 내각이 득세하고, 1894년 흥선대원군의 재등장으로 갑오경장(甲午更張)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러시아에 접근하여 일본세력을 추방하려고 하였다. 이에 일본 공사(公使) 미우라고로[三浦梧樓]가 을미사변(乙未事變)을 일으켜, 8월 2일 일본 깡패를 궁중에 침입시켜서 건청궁(乾淸宮)에서 그녀를 난자시해(亂刺弑害)하고 시신은 궁궐 밖으로 운반 소각하였다. 그 뒤 그녀는 폐위되어 서인(庶人)이 되었다

  즉, 미우라고로[三浦梧樓]는 일본인 아다치[安達謙藏]가 경영하는 한성신보사(漢城新報社)의 수십 명의 일인 낭인, 일본 수비대와 거류지 담당 경찰관들을 하수인으로 고용하고, 훈련대 간부 우범선(禹範善)·이두황(李斗璜)·이진호(李軫鎬) 등 친일파들도 포섭했다. 훈련대의 해산으로 다급해진 미우라 등은 민비제거 예정일이었던 8월 22일을 앞당겨 8월 20일 새벽에 행동을 개시했다. 일인들은 우선 대원군에게 가서 고유문(告諭文)을 결재받고, 서대문에서 훈련대 병사들과 합류하여 광화문에 도착했다. 여기서 폭도들은 훈련대연대장 홍계훈(洪啓薰)을 죽이고, 왕궁을 호위하던 다이 지휘하의 시위대들과 교전하여 패배시켰다. 폭도들은 고종과 민비의 침소인 건청궁(乾淸宮)에 난입하여 고종에게 미리 준비한 왕비의 폐출조서(廢黜詔書)에 서명을 강요하며 위협했다. 그러나 고종이 이를 거부하자 왕세자에게 칼을 휘두르는 등 극악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어 궁내부대신 이경직(李景稙)을 살해한 뒤, 옥호루(玉壺樓)에서 민비를 무참하게 학살했을 뿐만 아니라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신을 화장하는 야만적 행동을 저질렀다. 이후 대원군을 고종과 대면시켜 미리 준비한 조칙 3개안을 재가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왕비학살을 일본인들이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위장처리방안을 세웠는데 그 내용은 "이번 사건은 훈련대와 대원군이 결탁하여 행한 쿠데타이며, 일본군은 고종의 요청에 의해 출동하여 훈련대와 시위대의 싸움을 진압했고, 민비시해는 아는 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일적인 김홍집 내각을 세운 다음, 8월 22일 민비의 폐위조칙을 위장 발표했다. 그러나 고종, 러시아인 사바틴, 미국인 다이 등 목격자가 많아 사건의 은폐에 실패했다. 만행을 목격한 외국인들은 외교관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폭로했고, 이에 미국공사대리 앨런과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각각 군병들을 동원하여 시위를 하는 한편, 각국 공사의 회합 후 일본의 관여사실과 폐위 조치 불인정 등을 발표했다.

  1895년 10월 복호(復號)되고, 1897년(광무 1) 명성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그해 11월 국장(國葬)으로 청량리(淸凉里) 밖 홍릉(洪陵)에 장사지냈다. 원래는 경기도 양주 숙릉(肅陵)에 묻혔는데, 1897년 11월 청량리 홍릉(洪陵)으로 이장되었다. 1919년 고종이 죽은 뒤 다시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 홍릉으로 이장되었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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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26. 16:00

미연방의원 동해,독도 지지 Damul Korea2012. 4. 26. 16:00


【서울=뉴시스】유세진 기자 = 동해 표기와 관련, 국제수로기구(IHO) 총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중진 연방의원들이 동해와 독도를 지지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하고 IHO 등에 동해 표기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 눈길을 끌고 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는 25일 뉴저지의 연방하원 스티브 로스맨 의원이 미국지명위원회와 국제수로국에 동해 표기를 적극 지지한다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로스맨 의원은 23일 미주한인유권자 센터 사무실을 찾아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서한 사본도 직접 전달했다.




로스맨 의원은 “한인들의 염원인 동해를 적극 지지한다. 일본해는 과거 일본이 한국을 침략해 억지로 바꾼 이름이기에 지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다. 이를 막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20일 역시 뉴저지의 연방 하원 빌 파스크렐 의원이 동해 표기를 지지하는 편지와 함께 미 지명위원회의 트렌트 팔머 전무이사에 일본해 대신 동해 표기를 촉구하는 공식 서한을 전달했다.

파스크렐 의원은 “일본의 식민 지배 시기에 일본과 아시아 본토 사이의 바다를 나타내도록 강요당한 명칭, ‘일본해’에 대한 우려를 알고 있다”며 한국과 한인사회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최근 이 같은 유력 정치인들의 동해 표기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은 이들이 한인사회와 친숙한 이유도 있지만 최근 선거구 재조정에 따라 한인 유권자의 표심 향방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됐기 때문이다.

스티브 로스맨 의원과 빌 파스크렐 의원은 뉴저지 9선거구를 희망, 오는 6월5일 예비선거에서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9선거구는 한인들이 많이 사는 포트리와 펠리세이즈팍, 레오니아, 클립사이드팍, 잉글우드클립스, 릿지필드, 엣지워터, 리틀페리, 잉글우드 등이 포함되며 뉴저지 내 한인 유권자가 제일 많은 지역구(약 7000여명)이다.

지난 1983년 잉글우드시 사상 최연소 시장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로스맨 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세계은행 총재로 임명한 것에 기쁘게 생각한다"며, "한인 커뮤니티가 커뮤니티의 리더가 되는 다음 단계에 왔다"고 평가했다.

또한 지난달 뉴저지주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필립 권 뉴저지주 대법원 판사 인준에 반대한 것에 한국인의 실망과 분노가 큰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필립 권 인준 낙마는 대단히 실망스럽고 가슴아프다. 민주당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만두를 좋아 한다고 밝힌 로스맨 의원은 가족을 중시하고 열심히 일하는 한인사회에 친밀성을 느낀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조부모가 미국에 건너온 블루컬러 이민자의 후손으로 누나가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을 갔으며, 본인도 가족 중 최초로 변호사가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경쟁력 있는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부모를 따라와 불법체류자가 된 청소년들을 구제하는 드림법안(Dream Act)의 열렬한 지지자임을 상기시켰다.

로스맨 의원은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의회 표결 시 7명의 뉴저지 민주당 하원의원 중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의원이다. 처음에는 FTA에 반대 입장이었지만 지역 내의 한인 커뮤니티의 적극적 풀뿌리 로비에 힘입어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인유권자센터는 기자회견 전 로스맨 의원에게 한-미 FTA 찬성에 감사를 표하는 감사패를 증정했다.

dbtpwls@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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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26. 10:53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Damul Korea2012. 4. 26. 10:53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선왕들의 치욕을 딛고 한반도 역사상 가장 광대한 땅을 정복한 광개토대왕이 부활한다.


분단되면서 우리의 조국은 사실상 ‘섬나라’가 돼버렸다. 젊은이들이 방학이면 갖가지 차량에 올라탄 채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으로 달려갈 수 있는 북쪽 길이 막힌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조국을 동강낸 철조망의 벽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우리가 부모 세대에게 분단의 시작에 대해 원망했듯이, 이제 우리는 자녀 세대에게 분단의 지속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할 판이다. 따라서 통일은 우리에겐 단순한 민족의 재결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잃어버린 대륙을 향해 날아오르는 화려한 비상이 민족 재결합의 감동 뒷면에 장엄하게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끝없는 정복전의 동기, 원한!

우리에게 해방의 꿈, 대륙의 꿈, 천하의 꿈을 안겨주는 존재가 있다. 광개토대왕이다. 20세기 역사에서 우리 민족에게 자연스럽게 생성된 그런 꿈이랄까 잠재의식에 이어 21세기 벽두부터 몰아치고 있는 중국의 역사전쟁 때문에 광개토대왕은 더더욱 존경받는 한국인이 돼가고 있다. 과연 광개토대왕은 부활하는가? 우리의 꿈(★)은 이뤄질 것인가?

광개토대왕(재위 서기 391~413년)의 휘는 담덕(談德)이다. (이름도 좋다! 덕을 말하다, 담덕.) 역사서에조차 “어려서부터 체격이 뛰어나게 훌륭했으며 뜻이 고상했다”고 기록된 그는 제왕학-군사학을 마스터했다. 10대 나이의 태자 때 이미 군사를 이끌고 전장에 나갔다. 동서남북 모든 방면을 향해 달려나간 그는 마침내 우리 민족사에서 최대로 꼽히는 정복 군주가 된다.

무엇이 그를 이처럼 사방으로 치닫게 했을까? 그의 끝없는 정복전의 동기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제1차적 동인은 ‘원한’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면이 적으로 둘러싸인 채 아직 충분히 강력하게 성장하지 못한 국가는 필연적으로 주변 국가들과 싸울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선 어쩔 수 없이 치명적인 상처도 입게 마련이지 않은가. 담덕이 물려받은 고구려는 강력한 정복국가-완성형의 국가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이 서기 371년 평양까지 치고 올라온 백제군과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는 처참한 지경에까지 밀리고 있었다. 백제쪽의 위대한 영웅은 근초고왕이다.


원한은 서쪽으로도 깊다. 모용씨의 선비족과 겨루는 과정에서 서기 342년 수도 환도성이 함락되는 치욕을 겪었다. 이때 선왕 미천왕의 주검을 빼앗기고 태후를 포로로 붙잡혀가게 하는 극악한 비극도 경험한다.

고구려는 설욕을 위해 먼저 남쪽을 향했다. 고국원왕의 아들이자 담덕의 큰아버지인 소수림왕은 아버지 고국원왕이 죽은 지 4년 뒤인 서기 375년을 시작으로 376년, 377년 그렇게 해마다 백제를 공격했다. 이때는 담덕도 태어나 있을 때다. 역사학자 김용만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처음 말을 배우고 사물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될 때에 담덕이 본 것은 고구려 군대가 백제를 공격하러 가는 장면들이었다. 어린 담덕에게 고구려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적이 백제라는 사실은 뇌리에 깊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광개토대왕 즉위 다음해인 서기 392년 7월 왕은 친히 4만의 군대를 이끌고 백제가 점령하고 있던 황해도 지역을 공격해 10여개 성을 빼앗았다. 9월에는 북쪽의 거란을 쳐 남녀 500명을 포로로 사로잡고 거란에 빼앗겼던 백성 1만명을 설득해 이끌고 돌아온다. 그 뒤 10월에는 다시 남쪽의 백제로 진격해 백제가 자랑하는 수군기지인 관미성(그 위치에 대해선 오늘날의 강화도, 또는 강화의 부속섬인 교동도, 또는 예성강 하구 설의 3가지 정도가 있다)을 20일 만에 함락시킨다. 이 관미성 공격을 위해 광개토대왕이 쓴 전법이 눈길을 끈다.

관미성은 바다로 둘러싸인데다 사면이 절벽으로 이뤄진 난공불락의 성채였다. 여기를 공격하기 위해 대왕은 해군을 동원해 7개 길로 진격하였다. 관미성의 함락은 서해 지배권이 고구려로 넘어간다는 것이자, 한강변에 위치한 백제의 수도 한성이 고구려의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때문에 관미성을 탈환하기 위해 서기 393년 백제 아신왕 자신이 1만명을 거느리고 공격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이듬해에도 백제 아신왕은 황해도 수곡성을 공격하고, 그 이듬해에도 좌장 진무 등을 시켜 고구려를 공격하게 한다. 그러나 모두 실패한다. 이 수곡성을 둘러싼 싸움에는 광개토대왕이 친히 7천 병력을 이끌고 참전해 백제군 8천명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는 대전과를 올린다. 이 패전을 만회하기 위해 백제 아신왕은 자신도 광개토대왕과 같은 규모의 병력인 7천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로 진격했다가 큰 눈을 만나 철수하고 만다.


△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안에 전시된 광개토대왕의 전투도. 그는 동서남북 모든 방면을 향해 정복전을 벌였다.

이처럼 백제의 실패가 거듭되자 광개토대왕은 서기 396년 친히 수군을 이끌고 한강변에 있는 백제의 수도를 공격한다. 오늘날 풍납토성을 사면에서 포위한 광개토대왕의 총공세 앞에 결국 백제는 항복한다. 젊어서 즉위한 뒤 줄곧 광개토대왕의 라이벌처럼 겨뤄온 아신왕은 대왕 앞에 무릎을 꿇고 ‘영원히 고구려의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한다. 이에 광개토대왕은 항복을 받아들이고 아신왕의 아우와 신하 10명, 백제 백성 1천여명을 포로로 잡고 많은 재물과 함께 개선한다.

이처럼 백제와의 전쟁에서 대왕이 빼앗은 것이 58개성, 700여 마을에 이른다. 결국 고구려의 설욕전은 광개토대왕 때 한강유역까지 육박해 백제의 항복을 받은 뒤, 그 아들 장수왕 때 백제의 수도를 함락해 개로왕을 죽이는 것으로 한 매듭을 짓는다. 이때 백제는 한강유역을 버리고 남쪽 웅진으로 천도한다. 백제와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광개토대왕은 공격뿐만 아니라 방어에도 매우 뛰어났으며, 기병과 보병을 이끌고 대륙을 달린 것만 아니라 배를 타고 거대 병력의 해군도 훌륭하게 지휘하는 등 ‘전쟁의 신’과도 같은 면모를 보인다.

백제 아신왕, 무릎을 꿇고 항복하다

광개토대왕의 남진은 서기 399년 백제와 왜의 연합군에게 공격받은 신라의 구원 요청에 응해 대왕이 보병과 기병을 합쳐 5만이라는 대병력을 신라로 출병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고구려군은 신라로 가서 왜군을 물리치고 가야 지방까지 진격해 왜군을 완전히 물리친다. (바로 광개토대왕비에 나와 있는 이 부분의 비문 해석을 놓고 일본의 사학자들이 당시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 임나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의도적 오역은 당시 백제와 왜가 동맹 관계였다는 가장 기본적인 역학 관계에서 보면 출발부터 타당성을 잃고 있다.)


△ 경기 구리시에 있는 광개토대왕 동상. 뒷면에 쓰인 '광개토경평안호태왕'은 고구려 백성이 그에게 붙인 극존칭의 이름이며, 광개토대왕비의 서체를 그대로 쓴 것이다.(박승화 기자)

고구려의 남진은 설욕전에서 시작됐지만 중대한 결과로 이어졌다. 어느 의미에서는 광개토대왕이 무작정 땅만 넓히는 데만 골몰한 팽창주의자가 아니라 국가의 명운과 관련해 대단히 멀리, 크게 보는 전략가였음을 방증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역사서 <남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고구려는) 토지가 척박해 양잠과 농사로써 충분히 자급하지 못하므로 음식을 절약해 먹는다.” 그에 반해 남쪽은 좋은 곡창이 곳곳에 있었다. 고구려와 백제가 1차로 황해도, 2차로 한강유역을 놓고 격전을 벌인 이유는 바로 이 안정적인 식량공급 기지인 평야를 점령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중국과의 교역 통로를 장악하기 위해서다. 대왕은 그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남진에 이어 만주와 중원 향한 북벌로

나아가 고구려의 남진은 민족사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남진정책을 통해 삼국의 민족문화적 동질성이 강화 발전했다는 것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에 고구려의 문화가 대거 한반도 남쪽으로 밀려 들어왔다고 파악한다. 문화적으로 ‘경주 호우총에서 광개토대왕의 제사에 사용된 제기가 출토되고, 서북총에서는 장수왕의 연호가 새겨진 은그릇이 출토된 사실’은 고구려와 한반도의 문화적 융합·동질화가 획기적으로 가속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우리 민족의 핵심적인 먹거리로 자리잡고 있는 된장·간장이 바로 고구려를 통해 이 시기에 들어왔다는 논문도 발표됐다. 남진정책의 결과로 민족적 정체성이 발전해 결국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들의 대대적인 신라 귀순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왕의 남진은 이어 만주와 중원을 향한 북벌로 이어진다. 환도성을 함락하고 고구려에 치욕을 안겨준 선비족에게 설욕하기 위해 대왕은 먼저 서북방을 안정시켜 공격의 여건을 완전히 갖춰놓는다. 서기 395년 선비족의 북쪽 배후라 할 수 있는 거란을 치고, 다시 서기 398년 북방의 숙신을 안정적으로 복속시킨다.

그 뒤 선비족이 후연을 세우자 서기 407년 후연에 대한 전면전을 벌인다. 이때 광개토대왕은 백제 공략 때처럼 치밀하게 준비한 뒤 전격적으로 사면에서 들이치는 ‘필승 전법’을 구사한다. 백제의 관미성을 칠 때처럼 우회작전을 동원해 후연의 수도 용성을 사면에서 한꺼번에 압박한 것이다. 이때도 해군을 동원하였다. 후연은 결국 이런 공세에 굴복해 내부 반란이 일어나 고구려 출신인 고운을 왕으로 옹립하고 후연 대신 북연을 세운다. 광개토대왕은 고운을 고구려의 제후왕으로 받아들인다. 그 뒤 서기 410년 동부여도 정벌해 동쪽도 안정화한다.

이 결과 고구려는 만주 일대와 한반도의 북부 전역을 강역으로 거느린 동아시아의 대국으로 확고하게 군림하게 됐다.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위기의 나라, 왕이 전사하거나 왕의 무덤이 파헤쳐지는 치욕을 겪는 국가를 이제는 부챗살 모양으로 그 국력이 사면팔방으로 뻗어나가는 중심제국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왜 그리도 일찍 죽었을까

이 전성기를 가져온 광개토대왕에게 고구려 백성들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彊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극존칭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칭송했다. “태왕의 은혜는 하늘에 이르고, 태왕의 위력은 사해에 떨쳤나이다. 적들을 쓸어 없애셨으니 백성들은 평안히 자기 직업에 종사했고, 나라가 부강하니 백성이 편안하고, 오곡마저도 풍성하게 익었나이다.”

그런데 대왕은 왜 이리도 일찍 죽었을까? 아쉽다. 왜 그 아들 장수왕은 수를 충분히 누렸는데 39살에 죽었을까? 의문이다. 고구려 역대 군왕 가운데는 동명성왕처럼 40도 안 돼 죽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태조왕처럼 재위기간만 94년에 이른 것으로 기록된 왕도 있기에 그렇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정열을 전력으로 쏟아부은 사람들은 왜 그리도 일찍 가야만 하는 것일까? 아, 주몽이여, 담덕이여!!!

그들의 논리는 해괴하다

2003년 초 중국에서는 <중국고구려사>란 제목의 책이 출판됐다. ‘중국+고구려’ 논리를 노골화한 셈이다. 저자는 통화사범대학 고구려연구소 경철화 교수이다. 고구려를 중국으로 간주한 이 책은 나아가 ‘중국 역사에 따라 고구려의 시대를 구분하는’ 해괴한 논리까지 폈다.

(1) 양한(兩漢·전한과 후한) 시기: 추모왕(주몽왕)~산상왕 BC37~AD227년
(2) 위진(魏晋) 시기: 동천왕~호태왕(광개토대왕) AD227~412년
(3) 남북조 시기: 장수왕~평원왕 AD413~590년
(4) 수당(隋唐) 시기: 영양왕~보장왕 AD590~668년

이에 대해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대표는 “한 나라의 시대를 구분하면서 다른 나라의 왕조에 따라 시대 구분을 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논리”라고 비판한다. 나아가 고구려가 적어도 705년을 존속하는 동안 중국과 몽골에선 모두 35개의 나라가 생겼다가 사라졌다고 분석하면서 “도대체 705년 동안 꿋꿋이 이어온 고구려가 수없이 흥망을 반복해온 중국의 어떤 나라에 속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서 교수에 따르면 고구려가 존속하는 동안 존재하다가 사라진 35개 왕조 가운데 70% 가까운 24개 국가가 50년도 못 가서 망했다. 100년이 안 돼서 망한 국가는 30개로 늘어나 전체의 86%를 넘는다. 200년 이상 간 나라는 한나라(221년)와 당나라(290년), 단 두 나라뿐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35개 나라 가운데 절반 정도는 중국의 한족이 아닌 북방민족이 지배한 나라이다. 이 35개 나라는 모두 중국이 자기 나라의 역사로 간주하는 것들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경철화 같은 학자는 고구려사를 한족 위주의 4단계로 나누고 있다.


고려의 고구려 계승의식은?


△ 역사논쟁 끝에 거란 장군 소손녕을 물리친 고려의 서희.

고구려는 서기 668년에 멸망했다. 그 250년 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정신을 국호에서부터 반영한 채 새 왕조를 열었다. 과연 고려인들의 고구려 계승의식은 얼마나 강했던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역사의 한 장면은 고려의 서희와 거란침입군 장군 소손녕 사이에 벌어진 역사 논쟁이랄까 외교 논쟁이랄 수 있다.

고려 성종 12년(993년) 거란의 요나라가 80만 병력을 동원해 침입해오자 고려 조정은 들끓었다. “거란의 군세를 당할 수 없으니 항복을 하자”는 ‘항복론’과, “서경(평양) 이북의 땅을 베어주고 강화를 하자”는 ‘할지론’(割地論)이 조정의 대세를 이루고 있을 때 서희는 홀로 담판에 나선다. 소손녕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대의 나라 고려는 신라의 땅에서 일어났다. 고구려의 옛 땅은 우리 나라 소속인데 당신들이 이 땅을 침식하고 들어왔다. 나아가 우리와 땅을 접하고 있으면서도 바다를 건너 송나라와 관계를 맺으므로 오늘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제 땅을 베어 바치고 조공을 하면 무사할 것이다.”

이에 대해 서희는 이렇게 반박한다.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곧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다. 따라서 국호를 고려라 하고 수도도 평양으로 정한 것이다. 만약에 경계를 가지고 말한다면 귀국의 동경(요양)도 우리 국토 안에 들어와야 한다. 당신이 어떻게 우리가 침범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만일 여진을 구축하고 우리의 옛 땅을 돌려주어 거기에 성과 보루를 쌓고 길을 통하게 한다면 어찌 국교를 맺지 않겠는가? 장군이 만약 나의 의견을 귀국의 임금에게 전달한다면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결국 서희의 이 논거가 받아들여져 요나라 군사는 철수하게 된다. 이 담판과 관련해 한편에서는 요나라로서는 고려가 송나라와 국교를 끊고 자신들과 국교를 맺도록 하는 것을 받아들였기에 철수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담판은 고려의 고구려 계승을 국제적으로 선언하고 불완전하나마 관철시킨 한 장면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고려세계>에서는 왕건의 조부 작제건을 ‘고(구)려인’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왕건 스스로도 “발해는 본래 나의 인척의 나라”라고 발언하는 등 고구려 계승의식이 강하게 나타난다. 나아가 송나라 때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서도 “고려 왕씨의 선조는 고(구)려의 대족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중국 역사지도 속의 고구려

중국의 역사지도에선 고구려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특히 고구려의 귀속 문제로 논쟁이 가열되는 지금 이 문제는 그 의미가 매우 깊다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에서 제시하는 역사지도가 본격적으로 출판되고 있지는 않다. 다만 1982년 처음 출판돼 지난 1996년 6월 2차 인쇄를 한 중국지도출판사 발행 <중국역사지도집> 전 8권이 나름대로 최고의 권위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지도집은 중국사회과학원이 주판공청이며, 담기양 교수가 편집 총책임을 맡았다.

고구려와 관련된 지도 부분은 동북공정의 방향성과 달리 이전까지의 중국쪽 역사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지도1: 전한시대=고구려는 일단 현토군 안에 들어가 있다(초록색의 한나라 영역 안에 들어 있다). 그러나 ‘고구려’(高句麗)를 큰 글씨로 표시해 주변의 한나라 영역 밖에 있는 부여·숙신·옥저 등과 동격으로 표시하고 있다. 반면에 도시로서의 고구려(高句驪)는 한자 표기를 다르게, 아주 작게 표시해놓고 있다.


지도2: 후한시대=고구려는 완전히 중국 군현에서 벗어나 있다. 노란색으로 선명하게 분리돼 있고, 한군현이 대거 후퇴돼 있다. 한반도 남부는 아직 삼한으로 표시돼 있다.

지도3: 5호16국시대=고구려가 중국에서 분리된 별도의 영역으로 표시돼 있다. 중국쪽의 보라색 제나라와는 거란에 의해 확실하게 분리돼 있다. 그러나 고구려·백제·신라는 하나의 같은 영역으로 된 채 나라별로 구별돼 있지 않다.


지도4: 수나라시대=고구려는 수나라와는 요하를 경계로 갈라져 있다. 그런데 인쇄의 잘못인지 정권부족계(Boundary of a regime or a tribe)의 색깔선은 명확하게 돼 있으나 파란 점선은 돼 있지 않다. 고구려·백제·신라는 역시 하나의 영역 속에 들어 있고 별도로 구별돼 있지 않다. 이 지도에 따르면 고구려의 경계는 서쪽으로는 요하, 북쪽으로는 장춘 훨씬 북쪽의 헤이룽장성 북단 송화강 유역, 동으로는 두만강 하류의 훈춘 지역, 남쪽으로는 한강유역 정도까지 돼 있다. 만주 동부쪽에서는 말갈의 영향권이 많이 파고들어온 형상으로 돼 있는데, 이는 고구려와 말갈의 실질적인 종속 관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겨레21 2004-3-18)


http://www.dragon5.com/news/news20040318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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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Sea of (Korea) = (East) Sea of Korea



Originally, the Sea of ​​Japan means  that the east coast of Japan,

Otherwise,the Sea of Korea means that the east coast of Korea,East  Sea of (Korea).


朝鮮海 (=Sea of Korea) vs 日本海(=Sea of Japan)




일본인의 조상 제작 大日本海 地圖

- 조선해와 일본해의 원래 실제 위치 (일본 제작) -

 

79cm×125cm, 목판, 칼라 인쇄, 요시나가6년(1853년) 계축 초 봄, 지구 만국방도[타니무라 문고]
(79cm×125cm, 木版, 色刷, 嘉永六年(1853)癸丑初春,地球万國方圖 , [谷村文庫])
URL:  http://edb.kulb.kyoto-u.ac.jp/exhibit/maps/map025/image/index.html
(현재 교토대학교측에서는 위 주소 URL 삭제, 2011년 5월까지 유효)
(New)
 
(확대)

에도막부 말기 제작 1853년 일본에서 목판으로 인쇄된 세계地圖 '신정 지구만국방도(新訂, 地球萬國方圖)' 

- 1809년, 일본 변계약도(日本邊界略圖) 일본 지형 도록 -

1809년(文化6年6月),

일본인 다카하시 가게야스(Dakahashi Gageyas : 高橋景保) 제작.

신전총계전도(新鐫總界全圖) 부록 지형 도록.

 

 
 
 
 
 
 

 

 

大-曰 本 海 Deathu~!

자네들의 왜인 조상들은 날조가 국책인 후손에 비해서 솔직하고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1748년 영국의 유명한 출판업자,

地圖제작의 선구자라 는 토마스 제프리스(Thomas Jefferys; 1719~1771)제작 

 

18세기 영국 지명표기 사전. 

 

 

(1752년 프랑스 발랭의 일본 地圖)

19세기 이전에는 고려의 바다(高麗海; Sea of Korea)가 많았으나,

19세기부터 일본이 서양과 활발히 먼저 교류하면서부터 제국주의적 패권을 확장하면서 日本海가 갑자기 증가.

일본이 한국 점령기간 동안 1929년, IHO에 일본해를 무단으로 명칭과 자리를 변경해서 등록!

왜인 너희들은

100년동안 역사를 완전히 바꾸기 위해서 얼마의 로비 자금을 지출했어?  

大 - 曰 - 本 - 海 ! 만세!

大 - 曰 - 本 - 餞 ! 만세

大일본 로비 자금 만세~!

Banzai~!

왜인 너희들은
100년동안 역사를 완전히 바꾸기 위해서 얼마의 로비 자금을 지출했어?  
 

- 1809년, 일본 변계약도(日本邊界略圖) 일본 지형 도록 -

1809년(文化6年6月), 일본인 다카하시 가게야스(Dakahashi Gageyas : 高橋景保) 제작.

신전총계전도(新鐫總界全圖) 부록 지형 도록.


출처:http://blog.daum.net/dandakhan/1656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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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표기 놓고 한-일 네티즌 사이버 전쟁…IHO 총회에 관심
[세계일보] 2012년 04월 21일(토) 오후 03:06


[세계파이낸스]

한국과 일본의 네티즌들이 동해 표기를 두고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사이버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동해' 표기 문제를 확정짓게 될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IHO는 오는 23~27일 모나코에서 총회를 열어 동해 수역 표기와 관련한 입장을 정리한다.

우리측에서는 백지아 외교통상부 국제기구국장을 수석대표로 외교통상부와 국토해양부, 국립해양조사원 등 관계부처 관계자로 이뤄진 대표단이 참가한다.

대표단은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 S-23) 4판 발간시 동해 병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는 등 회원국들에게 동해 명칭의 정당성을 강력히 제기할 방침이다.

IHO는 모나코 총회를 통해 지난 5년간 활동 및 향후 활동 계획 등을 논의하고, 동해 수…역 표기 문제를 포함한 해양과 바다의 경계 책자 개정 문제를 심도있게 토론할 예정이다.

한편 73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한 IHO는 5년마다 총회를 개최해 국제수로 문제를 조정하고 있다.

세계파이낸스 뉴스팀 fn@segyefn.com



 


백악관 동해 표기 서명 바로가기


아래 링크를 눌러 백악관 청원 투표 페이지로 이동한다.



Create Account 를 눌러 FirstName,LastName,E-mail 을 입력한다.

자신의 E-mail에 백악관으로 부터 온 이메일 내용중 첫번째 링크를 클릭하여 투표 페이지로 이동하여 투표한다.


투표 진행중인 페이지



답변 메일:



또는 메일하단의 패스워드로 로그인



투표 완료 페이지:





독도수호 국제연대 http://www.dokdonetwork.or.kr


독도 아카데미 http://www.dokdoacade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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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이수봉 2014.03.26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도는우리땅 동해로표기하라

  2. Favicon of http://krkim.net BlogIcon krkim 2014.04.08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요!

2011. 10. 31. 20:52

KBS 광개토태왕 역사날조 심각 범죄급 Damul Korea2011. 10. 31. 20:52


KBS 광개토태왕 역사날조 심각, 범죄급

 


역사왜곡을 넘어 역사날조 수준,

역사드라마 PD,작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이제부터라도 제정신 차려야....


짱개같은 뼈속부터 빈나라는 없는 역사를 지어내고,남의 역사를 가로채며 호화찬란하게 개떼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스펙터클하고 광대한 스케일로 영화.드라마화 하고 미화하여 마치 대단한 나라인양 과대포장과 짱개란 나라가 원래 이렇게 쎈나라였구나라는 세뇌를 하는 반면에,어찌 우리나라는 노예 식민근성에 찌들어서 어찌 있던 역사도 일부러 깎아내리고 폄훼하는 짓거리를 할수가 있느냐,, 내국인이야, 잘못된 점을 안다지만 한류차원에서 외국에 수출되기라도 한다면, 외국인의 눈에 보잘것 없던 나라로 비쳐질지 모를 그 여파의 악 영향이 두렵구나.. 

어찌 용산전쟁 기념관,역사관에도 안가본 것들이 역사물을 찍는단 말인가?
 




펌)

황원갑님의 편집자에게 보내는 논평입니다..(소설가, 역사연구가)


사극의 인기는 시청자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역사적 교훈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는 점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에 반비례해 부작용도 만만찮다. 무엇보다도 역사왜곡과 날조의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은 설정부터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광개토태왕이 왕자 시절 후연(後燕)과의 전쟁 때 요동성에서 맹활약했다거나, 말갈족과 목숨 걸고 싸웠다는 이야기는 지나친 상상력이 빚어낸 날조다. 광개토태왕은 12세 때인 고국양왕 3년(386)에 태자로 책봉됐고, 18세에 즉위했다.

그런데 모용수(慕容垂)가 후연을 건국하고 황제를 칭한 것은 고국양왕 1년(384)의 일이다. 그때 광개토태왕 고담덕(高談德)은 불과 10세 소년인데 무슨 요동성 파견에 전쟁 주역이란 말인가? 게다가 담망이란 친형이 있었다는 설정도 근거가 전혀 없다

사극의 바탕은 역사적 사실이다. 실존했던 인물과 사건이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들겠다는 욕심에 작가의 상상력이 무제한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시청자들은 사극을 통해 그것이 정말 있었던 역사라고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잘못된 역사 지식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예전에 '주몽'에선 두 아이가 딸린 과부 소서노를 처녀로 설정하고, '여인천하'에선 문정왕후의 남동생 윤원형을 오라비로 만들어 남의 집 족보까지 멋대로 뜯어고치고도, 제작 책임자가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어이없었다. '바람의 화원'에선 남자가 분명한 신윤복(申潤福)을 남장여자로 둔갑시켰으니 이는 무지나 왜곡을 넘어선 망발 수준이었다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고 재미를 앞세우는 드라마라도 역사는 몇 사람이 입맛대로 비틀거나 뒤집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가볍게 여기고, 변곡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올바른 역사교육에 역행하는 범죄와 다름없다

------ 맞습니다....

지금 광개토태왕 사극은 무책임을 넘어선 범죄입니다...

김종선 이 개 자 슥은... 지금 우리 민족에게 우리 역사에대해 범죄를 저지르고 잇는겁니다...

참고로 작가.. 너무 욕하지 마세요...

물론 그 역량이 부족한건 사실이지만,

지금 이 개 막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종선 개 자 슥 에 의하여 설정되어진거고

구성, 전개, 대사내용.. 전부

이 개 자 슥의 사전 지시하에 작가는 그저 지시한대로 대본 채우기 급급한 저능아 일뿐입니다..

참고로 제가 올린 두 글은

밑에 어떤분이 알려주신 '광개토태왕 왜곡'을 검색해서 거기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펌) 
http://www.kbs.co.kr/drama/greatking/netizen/bbs/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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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s first Rocket 'SinGiJun' of Korea 600 years ago.

600년 전 조선의 로켓, 신기전!
한 번 발사되면 굉음을 내며 수백 미터를 날아가 적진을 초토화시켰던 조선의 비밀병기 
‘신기전’!
신기전은 고려 말 최무선이 만든 주화(走火)를 개량한 것으로 1448년 세종 30년에 만들어졌다. 소·중·대·산화신기전 등의 4가지 종류가 있으며 현대의 다연발 로켓과 장거리 미사일의 모태가 된 조선의 무기였다.


http://blog.naver.com/gogospace/10120056085
http://www.koreabrand.net/kr/know/know_view.do?CATE_CD=0005&SEQ=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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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oou.tomsshoesek.com/ BlogIcon toms shoes 2013.04.11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혼자였을때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1. 10. 5. 01:53

A Part of Korea History vs China History Damul Korea2011. 10. 5.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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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3. 19:22

볼리비아에도 '가나다라' 한글 수출 Damul Korea2011. 10. 3. 19:22

작년 7월부터 아이마라족 대상 시범 교육
모랄레스 대통령도 문자 보급에 긍정적
  •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 이어 지구 반대편 남미 볼리비아에서도 한글 표기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범사업 단계이지만 해당 부족 인구가 무려 200만명에 달해 한글 표기가 정식사업으로 정착되면 파급력이 상당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글 보급이 성공하려면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5일 주 볼리비아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수도 라파스에서 원주민인 아이마라족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글 표기 시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아이마라족은 부족 인구가 볼리비아 원주민 가운데 두번째로 많은 200여만명에 이른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다비드 초케완카 외교부장관도 이 부족 출신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아이마라족은 ‘말’은 있지만 표기할 ‘문자’가 없어 부족 차원에서 스페인어를 차용해 사용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1시간씩 이뤄지는 한글 수업에는 현재 40여명의 어린이·성인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모랄레스 대통령 등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홍락 주 볼리비아 대사는 2009년 찌아찌아족에 대한 한글 전파 사례에서 착안해 지난해 6월부터 모랄레스 대통령 등에게 사업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때마침 ‘탈식민주의’를 주창해온 모랄레스 정부가 식민지배의 잔재인 스페인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터라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올해 1월에는 아이마라어 한글 교본이 완성됐다.

    2월에는 초케완카 외교부장관이 “한글 표기사업 성과를 긍정 평가하며, 이 사업 확대를 통해 양국 간 문화·교육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싶다”는 공식 서한을 보내고 자신의 고향에도 한글 교육을 요청했다.

    우리 학계도 아이마라어 연구에 착수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소는 “지난달 말 현지에서 아이마라 단어 800개와 문장 50개를 녹취해 한글과의 언어학적 유사성을 따지는 음운 분석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분석 결과에 따라 볼리비아 국립대학 등과 교류 협정을 맺어 한글 교육을 체계화할 방침이다. 이 연구소 김창민교수(서어서문학)는 “쉽지는 않겠지만 볼리비아에 한글 전파가 성공하면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되고 국격도 높아질 것”이라며 “특히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기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한글로 그것을 기록한다면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 대사는 “남미의 주요 종족인 아이마라족에게 한글이 보급되면 당사자는 물론 우리나라도 한글을 포함해 우리 문화의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며 “시범 사업으로 끝나지 않도록 민간·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과 교육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나기천·조병욱 기자
     


볼리비아에도 '가나다라' 한글 수출

조선일보 양모듬 기자

 
남미 볼리비아의 원주민 아이마라(Aymara) 부족에게 본격적으로 한글을 보급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아이마라족은 210여만명에 달해 2009년 한글을 공식 표기 문자로 정한 첫 사례인 인도네시아 원주민 찌아찌아족(6만명)보다 34배나 많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최근 볼리비아의 투팍 카타리 아이마라 인디언대학(Universidad Indigena Bolivianno-Aymara Tupak Katari)과 한글 보급 사업에 관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2일 밝혔다. 

↑ [조선일보]아이마라족이 사용하는 한글 교본

↑ [조선일보]

서울대 관계자는 "지난 2월부터 아이마라족에 한글을 보급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했고, 최종적인 목표는 아이마라족이 찌아찌아족처럼 한글을 공식 표기 문자로 채택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볼리비아 인구의 55%(508만여명)를 차지하는 36개 원주민 인디언 부족들은 고유 문자가 없어 스페인어로 발음을 표기하지만 정확한 발음을 표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밝혔다. 

이번 한글 표기 사업 대상이 되는 아이마라족은 페루 남부와 티티카카호수 주변 등에 거주하며, 께추어 부족(250여만명)에 이어 둘째로 큰 부족이다. 현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다비드 초케완카 외교부 장관도 이 부족 출신이다. 

아이마라족에게 한글을 가장 먼저 알렸던 사람은 김홍락 전 볼리비아대사였다. 김 전 대사는 작년 6월부터 볼리비아 라파스주 아차치칼라 공동체 원주민 100여명에게 매주 두 시간씩 한글을 가르쳤다. 김 전 대사는 "학생들이 수업 두 시간 만에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쓰게 되면서 '한글은 쉽고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직접 한글 교재를 만들어 썼지만 사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서울대에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지난 2월부터 1차 아이마라어 음소(音素)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마라어는 자음이 ㄱ, ㅋ, ㄲ처럼 예사소리, 거센소리, 된소리로 나뉘는 등 한글 표기에 적합하다고 연구소 측은 밝혔다. 

김창민 라틴아메리카 연구소장은 "아이마라어는 한글과 달리 모음의 수가 적다"며 "ㅏ, ㅜ, ㅣ가 주로 사용되고 ㅗ, ㅔ 정도만 쓰여 모음 숫자를 줄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현지 사정에 맞추기 위해 '아래 아'나 '된이응' 등을 부활시키거나 모음과 자음을 합쳐서 쓰지 않고 영어 알파벳처럼 나란히 이어서 쓰는 방법 등도 검토 중이다. 

연구소 측은 이르면 내년부터 현지 언어 전문가를 초청, 한글을 배우도록 하는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현지에 한국문화원을 설치하는 계획도 추진키로 했다. 김 소장은 "볼리비아 정부가 원주민들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사업에 호의적"이라며 "앞으로 문자가 없는 여러 남미 원주민에게도 한글을 보급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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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29. 21:15

Return Gando (Jiandao) region to Corea (Korea) Damul Korea2011. 9. 29. 21:15

Return Gando (Jiandao) region to Corea (Korea)

 
Published August 11, 2011
The Gando (Jiandao) covenant is a treaty that was made between Japan and Qing (China) on September 4, 1909 right before Japan's occupation of Corea (Korea). This treaty has made the Gando region belong to China illegally. The Gando region is the birthplace of Corea (Korea). There are legal grounds that support that the Gando Covenant is invalid. "The Cairo Declaration" which was announced on December 1, 1943 states that all treaties, all rights and interests, and all privileges that were made available for Japan while Japan's invasion of the continent was taking place would be invalid and they shall be recovered to their previous status. That treaty was signed in Cairo by military ambassadors and diplomats of United States, England, China and Japan.

There is another legal ground to support that the Covenant is invalid. A Peace Treaty was signed by China and Japan on April 28, 1952. According to the fourth clause of the treaty "all Treaties, Covenants, Agreements that were signed prior to December 9, 1941 shall be void and nullified.". Therefore there is no doubt about the fact that the Gando Covenant signed by China and Japan in 1909 is void and invalid based on the current international laws. The fact that China has tried to make this Gando region its territory without returning it to Corea (Korea) is in "violation of the Peace Treaty" which was signed by them. It is a serious violation of the international laws as well.

According to the UN laws of 1919 and the Vienna Agreement, it defines that it is void and invalid when any party was forced to sign an agreement against their will. Therefore, the Gando Covenant that was signed during Japan's occupation of Corea (Korea) is illegal, void and Invalid according to the UN laws and the Vienna Agreement.

Corea (Korea) has the right and the responsibility to reclaim the Gando region. This matter remains as a diplomatic task that needs urgent attention from Corea (Korea) and China.

The recovery of Gando region means the recovery of our nation's identity which would include the unification of the North and the South Corea (Korea), Coreans (Koreans) in China, and other Coreans (Koreans) overseas. The rightful claim of the Gando region is an important focal point that can tie all Coreans (Koreans) into one.

The Gando Recovery Movement Headquarters has been working to recover the Gando region from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We have filed a lawsuit in the International Judicial Courts for the Gando Region to be returned to the Unified government of Corea (Korea).

On October 7, 1964, even Mao Tse-tung, the Chairma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clearly announced his intention to return the Gando region to Corea (Korea). Thereby, we respectfully request the leade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and the peace loving citizen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that the Gando region be returned to Corea (Korea) without any further delays.
TAG Gando, Jiand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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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에 도착한 순간, 화장실에 갇혔네
[몽골·러시아 여행⑦] 브리야트 사회보건복지부 장관과 만나다
11.09.06 10:32 ㅣ최종 업데이트 11.09.06 17:26
 

  
▲ 울란우데 시청 광장에 있는 레닌 두상.
ⓒ 한성희
 레닌 두상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러시아 브리야트 수도 울란우데 역에서 앞으로 우리 일정을 책임 질 세르게이 일행을 만나 미니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통역을 맡은 사예나는 브리야트 몽골족이었고 추장 딸을 연상시키는 예쁘고 착한 아가씨였지만 한국어 실력은 답답했다. 우리와 똑같은 용모를 가진 사예나는 전형적인 순수 브리야트 몽골족이다.

 

사예나는 한국 교환학생으로 6개월간 한성대학교에 유학했다고 한다. 브리야트 공화국에는 북한 유학생이 많고 한국유학생이 3명이 있지만 방학이라 울란우데에 없어서 자신이 통역으로 나왔다고 했다. 브리야트 공화국은 인구 100만 명이고 그 중 38만 명이 울란우데에 산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숙소는 숲속에 자리 잡은 노인요양원 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다. 커튼이 예쁜 식당에서 저녁을 준비해놓고 기다리던 요양원 원장과 요양원 직원들이 파란 천을 목에 둘러주며 환영했다.

 

채소볶음, 스테이크, 감자, 식빵 등으로 차려진 저녁은 맛있게 보였지만 기차여행으로 피곤해진 나는 저녁을 뜨는 둥 마는 둥 홍차만 마시고 말았다.

 

  
▲ 러시아 소녀 너무 예쁜 장애아동재활센터 러시아 소녀. .
ⓒ 한성희
 러시아 소녀

게스트하우스는 평소 요양원 노인을 면회 오는 가족들에게만 제공되는 방이라 한다. 정갈하고 시설도 좋았지만 화장실 휴지는 몽골이나 마찬가지로 질과 양이 형편없었다. 몽골에 며칠 머무는 동안 한줌 만한 휴지가 너무 적고 뻣뻣한 데 질려 스트레스를 받을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몽골에서 수입마트에 들렀을 때 "제발 질 좋고 부드러운 휴지 좀 써보자"고 내가 우겨서 수입화장지 2통을 샀을까. 공산품이 부족하다는 건 휴지 같은 사소한 물품에서 알게 된다.

 

다음날 '밝은빛' 장애아동재활센터와 브리야트에서 가장 크다는 국립보훈병원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다. 그 후에 브리야트 사회보건복지부 장관과 만날 예정이니 아침식사를 하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였다.

 

  
▲ 아동재활센터 나리샤 원장(오른쪽)과 브리야트 몽골족 소년, 러시아 소녀가 빵과 소금, 우유를 들고 환영했다. 그리고 파란 천을 목에 걸어줬다.
ⓒ 한성희
 러시아 환영 빵

 

100년이 넘었다는 시각·청각장애아동재활센터는 크고 좋은 시설을 갖췄다. 나리샤 원장은 "1년에 160명의 모자 장애인이 입소해 재활치료를 받고 있으며 16년 간 3000명을 치료했다"며 "한국의 관계 시설과 교류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조덕 한·몽사회정책학회 수석부회장은 "좋은 프로그램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지 한국에서 알아보겠다"며 노동연구자료와 후원금을 전달했다.

 

국립보훈병원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이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는다. 보훈병원장이 바로 어제 우리를 맞았던 세르게이고, 부원장이 나타샤였다. 노인요양원 게스트하우스 숙소도 세르게이 원장이 준비한 거라고 들었다.

 

보훈병원을 세르게이 원장과 나타샤 부원장의 안내로 둘러보았다. 사우나실, 수영장, 수술실, 휴게실 등 시설은 좋았지만 의료용 기계는 낙후돼 보인다. 예전엔 국가보훈자만 입원 치료할 수 있었는데 예산이 부족해 현재는 일반인도 15% 받아들여 입원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세르게이 원장은, 보훈병원은 브리야트 다른 지역에도 14개가 있고 참전자에겐 전액 무료이며 몽골과 3년 동안 환자를 교환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예쁜 커튼을 친 독실 입원실은 아늑하고 깨끗했고 한 달 입원비과 치료비를 합쳐 일반인에게 2000루불(8만 원) 정도라니 굉장히 싸다. 국가에서 모든 걸 무료로 제공하던 사회주의 제도 영향이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 브리야트 (좌부터) 세르게이 원장, 하마가노브야 사회보건복지부 장관, 윤조덕 한?몽사회정책학회 수석부회장.
ⓒ 한성희
 하마가노브야 사회보건복지부 장관

"내년에는 울란우데에서 세미나 개최 할 것"

 

병원을 둘러보고 나자 세르게이는 우리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기품이 있는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들어서자 세르게이는 하마가노브야 사회보건복지부 장관이라고 소개했고 우리는 박수로 환영했다.

 

일일이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나눈 하마가노브야 장관은 "울란바토르에서 열렸던 세미나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여러분의 러시아 견학에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조덕 부회장은 하마가노브야 장관에게 선물과 노동복지 관련자료를 증정하고 "브리야트 몽골인과 한국은 같은 뿌리를 가졌으며 여기에서 따뜻한 에너지가 나오는 가족 같은 관계를 다지겠다"며 "내년에 브리야트에서 한국, 몽골, 브리야트 3국 사회복지정책 국제세미나를 갖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에 하마가노브야 장관은 "한국과 관계 발전이 매우 기쁘고 많은 교류를 원한다. 내년에 브리야트에서 꼭 세미나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했다.

 

일요일임에도 나와서 한·몽사회정책학회 회원을 환영해준 하마가노브야 장관을 보며 한국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알 수 있었다. 브리야트와 한국의 교류가 이 세미나로 인해 더 깊게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병원에서 점심을 준비했다고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탁 가득 차려진 풍성한 러시아 음식을 대하고도 아침도 거른 나는 고작 토마토 스프밖에 먹지 못했다. 몽골에서부터 질기게 따라붙은 구토는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에 와서도 멈추지 않았다.

 

  
▲ 러시아 차주전자 아동재활센터 원장이 마련한 차 타임. 브리야트 전통문양이 박힌 도자기가 예쁘다.
ⓒ 한성희
 러시아 차 타임

먹음직한 만두가 가득 담긴 접시가 나오자 나타샤 부원장은 "브리야트에서 명절이나 정말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내놓는 음식"이라며 만두 한 귀퉁이를 뜯고 국물부터 쪽 빨아마셔야 한다고 시범을 보여줬다. '망할 구역질'에 시달리는 나는 양고기가 들은 만두라는 바람에 또 포기하는 수밖에.

 

점심 식사 후에 미니버스를 타고 교외에 있는 라마사원, 동방정교회, 수도회를 관광하고 울란우데 시내로 돌아왔다. 사예나는 시청 광장에서 차를 세우고 잠시 구경하라 권한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레닌 두상이 있는 곳이다.

 

똑순이는 더운 날씨에 지친 일행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서 차례로 건네주다가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이 떨어졌다고 더 못 판다고 어이없어 했다. 떨어져 멀리 앉아 있던 나는 아이스크림 구경도 못하고 광장을 천천히 걸었다. 브·러 합병 350주년을 기념하는 현수막을 광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

 

30분 쯤 후, 세르게이 원장이 차를 몰고 나타났고 울란우데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는 바이칼로 출발했다. 드디어 바이칼로 간다!

 

  
▲ 프리바이칼 프리바이칼 군 경계비
ⓒ 한성희
 프리바이칼

 

숲속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합창

 

울란우데 시내를 벗어나 언덕을 올라가던 차가 고개 위에서 멈춘다. 세르게이 원장은 러시아 보드카를 꺼내들고 우리에게 동전을 꺼내라 일렀다. 길 옆 나무에는 우리의 서낭당과 비슷한 푸른색, 흰색 천들이 걸려 있었다. 그 나무를 향해 세르게이 원장은 보드카를 잔에 따라 나무를 향해 뿌렸고 우리는 시키는 대로 동전을 던지고 입을 모아 외쳤다. 

 

"고수레!"

 

몽골 초원에서도 돌무더기에 푸른색과 흰색, 혹은 붉은색 천을 걸어놓은 몽골 서낭당 어워를 보았고, 조금 전 라마사원에서 나무에도 푸르고 흰 천이 줄줄이 걸려있었다. 무속의 고향이라는 바이칼이 근처라는 실감이 난다.

 

세르게이 원장이 보드카를 다시 따르더니 일행에게 돌린다. 대낮부터 보드카라. 누군가 세르게이 원장 차를 들여다보더니 "보드카가 박스로 실려 있다"고 놀란다. 그 유명한 러시아인의 음주 확인은 이제부터 시작인 게 아닐까.

 

일 년 중 6월, 7월, 8월 석 달만 빼고 항상 춥다는 러시아의 기후를 때문일까. 이 나라 사람들은 여름의 더위를 즐기는지 차에 에어컨이 없다. 이 차는 미국 포드사 제품이고 새 차로 보이는데 에어컨이 없다는 건 아예 장착을 안 하고 러시아로 들여왔다는 얘기가 아닌가. 몽골에서 타고 다니던 미니버스도 에어컨이 없었다. 덕분에 창가에 앉아 쏟아지는 햇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더위에 시달리다 차가 멈추는 바람에 얼른 밖으로 나왔다. 프리바이칼 군(君)에 들어섰다.

 

  
▲ 합창 프리바이칼 민속 합창단
ⓒ 한성희
 바이칼

 

세르게이는 일행을 숲으로 데리고 간다. 사예나는 프리바이칼 군 경계회의가 있다고 한다. 무슨 소리지? 차도 못 들어가는 숲 속에서 행사를 한다고? 제대로 통역을 못해주니 답답하기는 모두 다 마찬가지다.

 

숲길을 잠시 걸어 들어가니 멀리서 아름다운 합창이 들린다. 프리바이칼 민속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러시아 전통노래를 부르고 있다. 프리바이칼 민속 합창단의 노래가 끝나자 커다란 빵을 들고 온 러시아 여인이 우리에게 차례차례 돌렸다.

 

그리고 푸른숲 속 자작나무 아래에는 화려한 만찬이 차려진 식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이 신음 한다'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음식의 향연이다. 빵과 케익, 소시지, 과자, 햄, 과일, 레드와인, 화이트와인과 사과주스, 그리고 보드카가 상 위에 펼쳐있다. 동태전과 똑같은 '어무이' 전도. 우리가 프리바이칼 경계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는 파티였다. 이 숲의 화려한 환영식은 세르게이 원장이 마련했다.

 

  
▲ 프리바이칼 숲 속 식탁에 차려진 화려한 만찬.
ⓒ 한성희
 바이칼

 

짙푸른 녹색 숲을 배경으로 보랏빛, 분홍색, 빨강의 드레스를 입은 러시아 여인들과 화려한 음식으로 가득 찬 식탁은 마치 동화처럼 예쁘게 보였다. 식탁 옆에는 야생 블루베리 나무들이 작은 열매를 달고 있었다. 그렇지만 만성 구역질에 시달리는 내겐 어무이 전 한 점과 화이트 와인 두어 모금이 고작인 그림의 떡일 뿐.      

 

하얀 자작나무, 짙푸른 침엽수 길

 

프리바이칼로 들어서는 환영식이 끝나자 차는 다시 바이칼 호수를 향해 달렸다. 하늘 높이 솟은 하얀 자작나무 숲이 연이어 나타나고 수십 미터 짙푸른 침엽수림이 끝없이 펼쳐지는 도로는 한적했다. 체호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 묘사된 숲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소녀시절, 러시아 문학에 심취해 끝없이 상상하던 시베리아 타이가 삼림이 눈앞에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세르게이 원장은 중간 휴게소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냇물로 내려갔다. 자작나무가 무성한 시내는 시리듯 차갑고 맑은 물이 흐른다. 마셔도 괜찮은 깨끗한 물이란다. 차가운 냇물에 손과 얼굴을 잠시 적시고 더위를 식혔다.

 

투르카 마을이 있는 바이칼로 향하는 길은 참 아름다웠다. 달력에 있는 유럽 풍경화와 흡사한, 맑은 냇물이 흐르고 하얀 자작나무와 푸른 소나무와 전나무 숲과 푸른 들판이 이어졌다. 여유 있는 넓은 땅이 나는 부러웠다.

 

더위에 지치고 차디찬 얼음물에 목말라 있을 즈음, 바이칼에 도착했다는 반가운 말이 들린다. 차문을 열자마자 세찬 파도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조금씩 뿌리는 비와 함께 차가운 바람이 뒤를 이었다. 모두 환성을 지르며 모래밭을 뛰어 바이칼로 다가갔다. 파도거품과 거대한 바이칼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성난 바이칼은 비와 함께 흐린 날씨로 우리를 맞았다.

 

  
▲ 바이칼 도착한 날부터 바이칼은 날이 흐렸다.
ⓒ 한성희
 바이칼

 

바이칼 호수에 손을 담갔다. 너를 만나러 멀리서 왔단다. 물은 7월 초여름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갑고 손이 시렸다. 불과 5분 정도 밖에 있었는데도 반팔 티 차림의 나는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 차로 돌아와 점퍼를 걸쳤다.

 

커다란 통나무로 지은 2층 펜션에 들어서자 송진 냄새가 왁 밀려들었다. 10개 정도 되는 방이 있는 이 펜션을 우리가 통째로 쓴단다. 몽골부터 미지근한 물만 마셔온 나는 속 시원한 얼음물이 먹고 싶어 1층 벽돌 페치카 옆에 있는 냉장고 전기코드를 꼽고 생수를 차곡차곡 냉동실에 넣었다. 추운 나라에서는 냉수도 안 먹는지 차가운 물을 먹어보지 못했다.   

 

바이칼의 첫날, 화장실에 갇혔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간다는 말에 나는 쉬겠다고 고개를 젓고 똑순이 혼자 내보냈다. 며칠 동안 하지 못한 밀린 빨래나 하고 목욕을 한 뒤 누울 예정이었다. 잠시 침대에 누워 알아듣지도 못하는 러시아 텔레비전을 잠시 보다가 속옷과 양말, 티셔츠, 바지 등 빨랫감을 챙겨 자그마한 욕실에 들어갔다.

 

  
▲ 바이칼 소나무 향이 진동하는 통나무 펜션에서 화장실에 갇혔다. 에어컨이 없는 저 승합차를 타고 다녔다.
ⓒ 한성희
 러시아 통나무 펜션

 

유럽식 욕실은 바닥에 수채 구멍이 없어 빨래하기가 마땅치 않다. 세면대에서 양말 등 작은 빨래부터 해서 널고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한 뒤 그 물로 큰 빨래를 하겠다는 궁리를 했다.

 

양말을 다 빨아 방에 널려고 손잡이로 문을 열자 꿈쩍도 않는다. 다시 잠금 꼭지를 반대로 돌리고 열어봐도 안 열린다. 당황해서 미친 듯이 열어봤지만 이번에는 잠금 꼭지가 뚝 떨어져버리는 게 아닌가. 손잡이를 아무리 돌려도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순간, 허술하게 문고리를 만든 허접한 러시아 기술을 저주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한 이 펜션은 아름다웠지만 방에 들어오자마자 창문을 열다가 고리가 돌아가지 않아 애 먹었던 생각이 났다. 새시 창문은 열기도 힘들고 원 위치로 닫기는 더 힘들 정도로 각도 맞지 않았었다.  

 

'큰일 났다!'

 

등에서 식은땀이 솟았다. 주먹을 쥐고 문을 쾅쾅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모두 저녁을 먹으러 나가서 아무도 없으니 소리 질러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펜션은 관리인조차 구경도 못했고 텅 비어 있는 상태다.

 

똑순이가 돌아와야 문을 열고 나를 꺼내줄 것이다. 더욱이 바이칼의 첫날인데 저녁만 먹고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다. 다른 곳에 가 늦게 들어온다면 나는 몇 시간이고 꼼짝없이 이 좁은 욕실에 있어야 한다. 맥이 풀려 변기를 의자 삼아 주저 앉아버렸다.   

 

바이칼에 온 첫날, 나는 어이없게 화장실에 갇혀버렸다

ⓒ 2011 OhmyNews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2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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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게서 간도 되찾는 다섯가지 방법은
<특별기고 일본-중국 흥망 키, 류큐⑮ 제4세대, 동북공정으로 드러나다> 
국제법에도 없는 ´100년 시효설´ 유포자는 중국인 아닌 한국인들…
강효백 경희대 교수 (2011.08.27 04: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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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은 과거 3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마치 300년 전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시절의 대청제국 같다. 점(點)을 돌려달라는 게 아니라 선(線)과 면(面)을 통째로 삼키고 싶다고 공공연히 부르짖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알려진 대로 중국은 지금 중일 분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센카쿠(첨각(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만 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최근 중국 일각에서는 센카쿠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沖繩, Okinawa)를 포함한 140여개 류큐(瑠球, Ryukyu) 전체가 중국 영토라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 가고 있다. 2009년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한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쉬융(徐勇) 베이징대 교수를 비롯한 중국 역사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목청을 돋웠다.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의 강압에 의한 1879년의 류큐 병탄, 2차 세계대전 후인 1972년 미국의 오키나와 반환 등은 국제법상 근거가 없으니 센카쿠는 물론, 류큐 군도내 140여개 섬과 해역 전체를 송두리째 중국에 반환해달라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류큐를 중국 영토라는 주장이 간헐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다가 2006년 이후 다시 수십 편의 논문을 비롯한, 언론 학계의 주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현재 중국당국은 묵인을 넘어 조장 내지 권장하고까지 있다는 동향마저 감촉되고 있다. 도대체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필자 주>


목차 

1. 넓은 일본의 키, 류큐 
2. 제1차 일본제국주의의 은신처, 류큐 
3. 제2차 일본제국주의의 출항지, 류큐 
4. 제3차 불침 항공모함의 출항지, 류큐 
5. 이중 종속 왕국, 류큐의 흥망사 
6. 30년 터울, 일제의 류큐와 조선의 병탄사 
7. 좁은 중국의 족쇄, 류큐 
8. 그랜트 전 미국대통령의 류큐 3분안 
9. 루즈벨트와 장제스 
10. 실크로 포장한 중화제국 
11. 순망치한의 입술은 북한이 아니라 만주였다 
12. 제1세대, 서남방 티베트와 인도를 침공하다 
13. 제2세대, 동남방의 여의주를 입에 물다 
14. 남서군도, 이어도와 영서초, 오키노도리 
15. 제3세대, 서북방에서 달콤한 과실을 따먹다 
16. 제4세대, 실키 중화제국, 동북공정으로 드러나다 
17. 독도와 센카쿠 
18. 제5세대, 북한과 류큐로 나아갈 것이다
간도를 잃지 않으려면 잊지 않아야 한다 
한국과 중국 사이(間)에는 섬(島)이 있다. 그 섬은 바로 간도(間島)이다. 간도는 주위가 물로 둘러싸인 예사 섬은 아니다. 간도는 사방이 동북아 민족의 혈사(血史)로 에워싸인 ‘역사적 섬(Historic Island)’이다. 

바다의 섬들이 21세기 세계 각국에게 그 중요성이 갈수록 도드라지는 땅이라면 대륙의 섬 간도는 대한민국에게 체념과 망각의 피안너머로 사라지게끔 해서는 안 될 우리의 소중한 옛 영토이다. 잃지 않으려면 잊지 않아야 한다. 

간도라는 지명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조선과 청나라의 사료를 검토해보면 만주족의 청나라가 중원을 석권한 뒤 만주 중북부지역을 약 200년간 사람의 주거와 수렵활동이 금지된 중간지대인 봉금지역으로 정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 지도들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과 청나라 양국간의 국경선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아니었다. 압록강과 두만강보다 훨씬 북쪽으로 들어간 지역에서 양국간의 경계가 획정되었다. 지금의 랴오닝, 지린 성의 남부지역은 조선땅이었다. 랴오닝과 지린 성의 중북부와 헤이롱장성은 중간지대 즉 간도였다. 간도는 세계역사상 최장 최대의 비무장지대(DMZ)였던 셈이다. 

따라서 이제껏 간도로 알고 있었던 현재의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는 19세기 중반까지는 중간지대, 간도가 아니라 완전한 조선영토에 속하였다. 원래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이북지역에 위치해 있었던 간도가 19세기 후반에 이르자 남만주 지역으로 축소 후퇴하여 원래의 간도지역은 북간도로, 조선영토였던 지역은 두만강 이북의 동간도와 압록강 이북의 서간도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 1745년 키친(T. Kitchin)이 제작한 ‘A Map of QUAN-TONG or LEA-TONGE PROVINCE ; and the KINGDOM of KAU-LI or COREA’ 지도. 동해를‘SEA OF KOREA’라고 표기했다. 중국과 한국의 국경선이 압록강, 두만강 이북에 형성 된 것으로 나온다. 경희대 부설 혜정박물관 소장, 신동아 2005년 3월호 참조 출처: http://blog.naver.com/solhanna?Redirect=Log&logNo=80010346647

◇ 1749년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리에(D’Anville)가 제작한‘et des Rojaumes de COREE ET DE IAPAN’ 지도. 한국 평안도(PINGAN·왼쪽 밑줄)가 압록강 이북의 현 중국 집안지역까지로 돼 있고, 함경도(HIENKING·오른쪽 밑줄)도 두만강 이북 간도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18세기 제작된 서양의 여타 지도에도 양국간의 국경선은 이와 흡사하게 표시되어 있다. 경희대 부설 혜정박물관 소장, 신동아 2005년 3월호 참조, 출처: http://blog.naver.com/solhanna?Redirect=

동북공정, 암탉(중국)이 병아리(북한)를 데리고 가듯 

장쩌민시대의 서부대개발이 경제적 접근논리에 중점을 두었다면, 후진타오시대의 동북공정은 역사적 문화적 지정학적 접근논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동북지역(만주)과 한반도의 역사적 문화적 지정학적 상관성을 부정한다. 

동북공정에서의 ‘동북’이라는 범위는 동북 3성에 국한하지 않는다. 간도(남만주)는 물론 북한지역(특히 대동강과 원산만 이북 지역)과 그 해역, 나아가 제주도와 이어도 해역 등 한반도를 모두 포괄한다는데 문제의 엄중성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동북공정은 초기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논리개발에서 진화를 거듭하여 이제는 한반도와 주변 해역까지 넘보는 전 방위 공세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북한지역의 동해 어업권을 획득하고 나진항을 50년조차(기한자동연장계약식 조약체결로서 사실상 영구조차)한 후진타오 정권은 자국의 내해를 북한의 동해 해역으로까지 확장하려는, 즉 중국의 군함이 동해에까지 진출하는 중장기플랜을 수행하려는 동선(動線)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은 근래 <환구시보(環球時報)>를 비롯한 각종언론매체를 통해 북한급변사태 발생시 중국군의 북한지역내 주둔 계획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일부언론에도 공개된 바 있는 ‘암탉이 병아리를 데리고 가는’, 이른바‘모계대소계(母鷄帶小鷄)계획’을 중국의 북한전문 인터넷 사이트 <朝鮮中國>에 네티즌 논객 논단 형식으로 슬금슬금 흘리고 있다. 암탉은 중국을, 북한은 병아리를 의미하는 이 계획의 골자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북한 급변 사태 때 남포와 원산을 잇는 대동강 이북지역을 점령하여 북한전역의 치안을 유지해 북한 주민들의 동북3성 유입을 막는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의 궁극적 목표가 북한지역 점령과 한반도 주변해역 침탈이라는 마각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 주변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도를 비롯한 북방영토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대응을 살펴보았더니, 피해의식과 무사안일을 넘어 자책골이 연상될 만큼 심각한 문제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 다섯 가지만 들자면 

1. 간도 100년 시효설 
2. 헌법 제3조 
3. 통일신라 시대명칭 
4. 북한의 반민족적 저자세 
5. 총체적인 대응전략 미흡 등이다. 

이들 5개 문제점과 관련한 심층 분석과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자책골 1호, 간도 100년 시효설 

무엇보다 우선 척결해야 할 것은 ‘간도 100년 시효설’이다. 영토를 점유한지 100년이 지나면 나중에 무효로 할 수 없다는 고약한 괴담이 우리나라 온오프라인에 정설로 둔갑해 창궐하고 있다. 내로라할만한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조차도 각종 시론과 칼럼에 100년 시효설을 근거로 하여 “이제 간도는 영영 중국 땅”식으로 적고 있다. 때문에 일반 국민들 다수는 간도가 중국으로 넘어간 지 100년이 지났으니 간도는 영원히 중국 땅으로 굳어져버렸다고 탄식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국제법상 영토문제는 시효가 없다는 것. 필자가 16세기부터 2011년 현재까지 동서고금의 모든 영토관련 국제규범과 다자조약, 양자조약, 국제판례를 전수분석한 결과 남의 나라 영토를 ‘100년간 점유’하면 자기 나라 땅이 된다는 조항이나 판례는 단 한 구절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4세기 전의 단 한 사람만의 주장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국제법의 아버지(필자 의견: 서세동점의 제국주의시대 유럽우월사관에 근거한 과잉칭호) ´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 그는 저서 <전쟁과 평화의 법>에서 “실효적으로 점유한 영토가 100년이 지나면 해당국의 영토로 간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로티우스가 이런 주장을 한 시대적 배경은 무엇일까. 그가 활약하던 17세기초 네덜란드가 자바에서 영국세력을 몰아내고 인도네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에 부응하기 위한 일종의 ‘주문자생산방식의 맞춤학설’내지 ‘어용학설’이었다. 만일 100년 시효설이 영원불변의 진리라면 그로티우스의 모국인 네덜란드가 350년간 통치한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네덜란드 땅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간도 100년 시효설 유포자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간도 100년 시효설을 최초로 유포자는 누구일까? 필자는 먼저 중국측을 의심하고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러나 중국의 논문과 언론매체에서는 한국이 간도 100년 시효설을 주장하고 있다는 내용 외에는 중국측이 조작 유포한 혐의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간도 관련기사 말미에 “한국 너희들 말처럼 이제 100년 지났으니 간도는 영원히 우리 중국땅이다. 으흐흐흐”식으로 비웃거나 표정관리하는 중국 네티즌들의 댓글은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간도 100년 시효설의 최초 유포자는 중국인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한국인 김 모 교수였다. 김 교수는 2009년 11월 9일 한 인터넷 매체에다‘간도영유권 100년 시효설의 긍정적 수용 제의’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이다. 이는 필자가 언론매체 칼럼으로는 한국 최초로 (국민일보 2009. 5.20) 간도 100년 시효설이 허구라는 견해를 밝힌 것을 계기로 하여 우리학계 일각에서 일기 시작한 의문에 대한 해명성 글로 여겨진다. 

김 교수는 그 기고문에서 100년 시효설은 1977년 백산학회 창립 제31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자신의 주장에 기원한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김 교수 글의 요지를 그대로 인용해본다. 

당시 필자는 그로티우스의 100년 시효기간을 원용하여 “1909년 이래 간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중국은 한국의 항의가 없는 경우 적어도 2009년에는 국제법상 간도의 영유권을 취득하게 된다”고 주장하여 상기 ‘시효취득 100년 시효설’을 주장한 바 있다. 

상기 김교수 이외에도 또 다른 김 모 재미학자는 실효지배 100년을 넘기면 국제소송조차 제기할 수 없다고 하며 그로티우스의 100년 시효설을 가장 먼저 제기한 주인공이라고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하였다. 
두 김 교수들은 서로 그로티우스 100년 시효설을 먼저 말했다며 이른바 ‘원조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는 마치 축구경기에서 자책골을 자기가 넣었다고 우기는 격이다. 

먼저 후자의 김 교수에게 묻겠다. 100년을 넘기면 국제소송조차 할 수 없다고 그로티우스가 언급한 적이 있던가? 두 김 교수에게 묻겠다. 설령 그로티우스가 국제법의 아버지, 아니 국제법의 할아버지라고 치자, 그렇지만 그로티우스의 주장이 국제법세계에서 영원히 따라야 할 전지전능한 신의 말씀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17세기 일개 학자의 주장의 효력이 현대에 통용되고 있는 국제협약, 다자조약, 양자조약, 국제판례, 국제관습법, 보편적인 국제법원칙보다 우선하는가? 이것과 17세기 조선시대 일개 학자의 주장이 21세기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보다 우선 적용해야 한다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과 그 무엇이 다른가? 

◇ 1700년대 중반 중반 정상기(鄭尙驥)가 만든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한국지도인 동국대전도(보물 제1538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세로가 2m72cm에 달하는 대형 조선전도로 표현된 범위는 남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고 있다. 특히 18세기 무렵 청나라가 봉금조치를 내린 북만주의 간도지역과 조선영토의 경계를 명확하게 표시해주고 있다. 출처: http://cafe.naver.com/secretofisland/25
99년 만에 중국이 홍콩을 반환받았다고?

물론 그로티우스의 100년 시효설을 원용하고, 민간단체들이 이 설을 유포한 동기를 최대한 좋게 해석한다면, 간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정부에 간도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100년 시효설은 결과적으로(단, 누구라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결과), 중국에게 간도를 내주는 가장 완벽한 논리를 제공한 셈이다. 두 김 교수가 그로티우스의 주장을 간도 100년 시효설의 근거로 원용한 것은 참으로 근시안적이고 자가당착적인 국토 참절적 언행이 아니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이러한 치명적 자책골로 연결되는 백패스‘100년 시효설’이 우리 수비수의 몸에 맞아 골문 가까이 진입한 시점은 1997년 홍콩반환 무렵이었다. 당시 한국의 정 언 학 일각에서는 중국이 홍콩을 99년 만에 반환받았으니 우리도 2009년이 되기 전에 일본이 중국에 불법으로 넘겨준 간도를 되찾아보자고 목청을 돋우었다. 100년 시효설이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원칙인양 더욱 그럴싸한 철칙처럼 굳어졌다. 

흔히들 조차조약 기간은 대부분 99년간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조차조약의 조차기간은 조약 당사국이 정하기 나름이다. 99년만에 중국이 홍콩(홍콩섬+구룡반도+신계)을 반환받은 것이 아니다. 중국은 영국에 1842년 영구조차당하였던 홍콩섬을 155년 만에, 1860년 영구조차당하였던 구룡반도를 137년만에 되찾은 것이다. 중국이 99년 만에 되찾은 지역은 1898년 제2차 북경조약으로 99년간 조차당하였던 홍콩변두리지역인 신계지역 뿐이다. 

그리고 100년 시효설이 맞는 것이라면 신계를 제외한 홍콩의 핵심부분인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여전히 영국 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100년 시효설이 정설이라면 포르투칼이 450여년간 점령한 마카오도 여전히 포르투칼 땅이어야 한다. 

대못을 뽑아내듯 간도 100년 시효설을 척결해야 

간도협약은 법적 권원이 없는 제 3국에 의한 영토 처리이므로 국제법상 무효이다. 일제가 1909년 간도협약을 체결한 바탕이 된 1905년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 역시 강압에 의한 것으로 원천 무효이다. 국제법상 보호조약이란 보호국이 외교권을 장악할 뿐, 피보호국의 영토처분권까지 갖게 하는 것은 아니므로 동 조약이 법적근거가 될 수 없다. 

거듭 강조하건데 국제법상 시효기간이 없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팔마스섬사건과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국경분쟁사건 등 소수의 국제 판례에서는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의 영토를 통치권을 행사해왔는데, 당해 영토의 국가가 ‘오랫동안’ 항의하지 않은 경우, 그 영유권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 판례는 구체적 시효기간은 명시하지 않고 있지만 100년이라면 ‘오랫동안’으로 유추 해석될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하루빨리 간도협약이 무효임을 공식 선언하여야 한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대못을 뽑아내듯 다수 국민들을 체념하게 만든 원흉, 간도 100년 시효설이 터무니없는 허구라는 실상을 공포하고 이를 널리 홍보하여야 할 것이다. 

100년 시효설을 주장하거나 그것의 유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인사들은 지금이라도 100년 시효설이 오류였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9년 백산학회와 간도되찾기 운동본부는 100년 시효설은 오류였다고 솔직히 고백한 바 있다. 지식인일수록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시정할 수 있는 용기는 목숨을 바치는 용기보다 더욱 어렵다고 한다. 필자는 이러한 진솔한 용기를 실행한 두 민간단체를 높이 평가하며 필생의 연구태세의 거울로 삼고자 한다. -계속- 

글/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중국법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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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만 국립사범대학에서 수학한 후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이징대학과 중국인민대학, 중국화동정법대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으며 주 대만 대표부와 주 상하이 총영사관을 거쳐 주 중국 대사관 외교관을 12년간 역임한 바 있다.
Posted by 3LegsCrow::하늘날다 두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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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대명사 나치, 그 원조는 미국이었다
[오마이뉴스] 2011년 08월 27일(토) 오전 11:00
[오마이뉴스 이숙경 기자]
▲ <그들이 온 이후> 표지
ⓒ 당대


우리 어머니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서부영화다. 특히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신다. 그런데 서부영화의 공식은 딱 한 가지다. 권선징악. 주인공인 백인은 용감하고 정의롭다. 반면에 주인공을 괴롭히는 인디언은 거의 언제나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호전적이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인디언을 바라보는 시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대표적인 영화가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늑대와 춤을>이다. 야만적인 악당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서부 수족의 순수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늑대와 춤을>에 나온, 시보다도 아름다운 수족의 기도문 일부를 보자.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둔 교훈을 내가 깨닫게 하소서/ 다른 형제들보다 내가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다할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 품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주소서


서부영화에서 보았던 잔인하고 야만적인 모습이 느껴지는가. 지난 300년 동안 백인들은 그들의 신대륙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미개척지 대륙을 개척하고 야만인을 개화시키는 선한 이미지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왜곡해왔다. 우리는 지금껏 강자의 이야기만 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내주고 결국 절멸에 이른 토착민들의 가슴 아픈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치의 '원조' 는 콜럼버스


북아메리카 토착민으로 크리크족(부계)과 체로키족(모계) 혈통을 지닌 워드 처칠은 <그들이 온 이후>를 통해 일반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던 콜럼버스와 미국에 대한 통념을 산산이 깨뜨린다. 세상 사람들은 콜럼부스를 신대륙의 발견자라 하여 어린이 위인전기에 나오는 위인으로 부르지만 저자는 콜럼부스를 '원조 나치'라고 부른다. 이유는 뭘까?


1492년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스페인으로 돌아간 콜럼버스는 다음해 17척의 군함을 이끌고 다시 에스파뇰라섬(현재의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토착 타이노족을 노예화하고 멸종시키는 정책에 착수했다. 이 정책으로 1493년에 800만이었던 타이노족은 1496년에는 300만, 1500년경에는 10만으로 인구가 감소했다. 그리고 1542년에는 겨우 200명 남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이들은 콜럼버스가 처음 도착했을 당시 1500만 명에 달했던 카리브해 전역의 다른 인디언들과 함께 멸종되었다(본문 18쪽, 35쪽).


▲ 영화 <늑대와 춤을>의 한 장면
ⓒ MGM


콜럼버스 친구의 아들로 아메리카 최초의 성직자였던 라스카사스가 쓴 <인디언 파괴에 관한 간결한 보고>에는 이들이 원주민들에 대해 얼마나 잔혹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등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1억 명 이상의 원주민들이 학살되었다. 과연 콜럼버스는 영웅인가?


스페인 사람들은 누가 한칼에 사람을 두 쪽 내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내장을 꺼낼 수 있느냐를 두고 내기를 걸었다. 그들은 젖먹이 아기의 발을 잡아 엄마 품에서 떼어내어 머리를 바위에 내동댕이쳤다. (줄임) 그들은 아기와 어머니들을 함께 칼로 찔러 꼬챙이처럼 꿰기도 했다. - 본문 20쪽


아메리칸 드림? 흥!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이 주연했던 영화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1992)는 "그들은 꿈이라 했고, 우리는 그것을 위대한 사랑이라 부른다"라는 포스터의 문구와 함께 낭만적인 사랑의 대서사시로 기억되는 영화이다. 누구라도 말을 타고 먼저 가서 깃발만 꽂으면 내 땅이 된다며 아메리칸 드림을 얘기했던 그 영화.


그런데 그 땅은 원래 누구의 땅이었을까? 비어 있던 땅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1820~1830년대 미국은 토착민 전체를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강제소개(强制疏開)함으로써, 미국 동부지방을 '청소'하여 백인 정착민들의 식민지역으로 만드는 정책에 착수했다. 백인 정착민들에게 땅을 빼앗긴 체로키족은 1500마일의 '눈물의 행로'를 따라 강제 이송되면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본문 37쪽).


흔히 교회 성가로 알려져 있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는 '눈물의 행로'에서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토착민 체로키족의 피맺힌 기도의 노래이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깃발을 꽂은 그 땅이 바로 이들이 쫓겨난 곳이다. 그러나 영화는 톰 크루즈의 꿈만 보여주고 처절하게 죽어간 토착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히틀러는 생활권정책이라 하여 유대인들을 게토에 몰아넣고, 나중에는 아우슈비츠, 다하우, 부헨발트, 작센하우젠 등에 세워진 약 150개의 수용소에 강제이주시킨 후 학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는 약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하였다.


전쟁 후 미국은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나치독일의 지도층을 '침략전쟁', '반인도주의 범죄' 혐의로 대부분을 처형하거나 투옥시키면서 전 세계에 '백인기사'의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독일의 이 생활권정책이 아메리카 토착민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따라한 것이라고 아돌프 히틀러가 분명히 밝혔다는 점이다(본문 60~61쪽).


▲ 영화 <파 앤드 어웨이>의 한 장면
ⓒ 유니버셜


나치보다 더한 미국


UN이 채택한 제노사이드 조약 제2조는 국민·인종·민족·종교집단 전체 또는 부분을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집단 구성원을 살해하는 것, 집단 구성원에 대해 육체적·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것, 육체적 파괴를 초래할 목적으로 의도된 생활조건을 집단에게 고의로 부과하는 것, 집단 내에서의 출생을 방지하기 위해 의도된 처치를 부과하는 것, 집단의 아동을 강제적으로 타 집단에 이동시키는 것이 제노사이드에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백인들은 인디언들의 땅을 뺏기 위해 그들을 학살했다. '운디드니 학살'을 비롯한 수많은 학살을 통해 백인들은 땅을 빼앗고 인디언들을 좁은 '보호구역'으로 몰아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1970년대에는 인디언 가임여성의 약 40%를 대상으로 강제적 불임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토착민을 말살하고자 했다.


또한 토착민의 사회문화적 일체성을 파괴하기 위해 인디언 아기들을 비인디언 가정에 입양시켜 인디언 혈통이 밝혀지지 못하도록 하였고, 어린이들을 자기 집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기숙학교에 강제로 보내 10년 넘게 기숙사에서 살게 하면서 인디언 말이나 종교의식을 금지시켜 정체성을 찾지 못하도록 하였다(본문 40~41쪽, 299~301쪽).


미 연방정부의 통계에 따르더라도 인디언들은 북아메리카 전체 인구 중에서 가장 가난하고 실업률은 가장 높고 취업을 해도 급여수준이 가장 낮으며 교육수준이 가장 낮다. 그 결과로 인디언들은 영양실조, 당뇨병 및 결핵 발병률, 유아사망률, 전염병 발생률이 가장 높다. 1980년에 보호구역에 사는 토착민 남성의 평균기대수명은 44.6세, 여성은 그보다 3세 많았다.(43 ~ 44쪽, 301쪽)


저자는 수많은 통계와 자료, 그리고 각종 기록을 통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토착민을 절멸시키려는 미국의 오랜 시도를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자신을 '토착민주의자'라 밝힌 저자는 인디언 문제의 해결방법으로 토착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토착민주의는 자연에 순응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세계관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쓰촨대 강연에서 중국의 인권문제를 언급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은 그동안 북미 관계를 개선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북한 내 인권문제를 꼽아 왔다. 그런데 과연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민간인 학살은 고사하고 자국 내 토착 인디언들에게 행했던 수많은 학살과 탄압에 대해 미국은 어떠한 반성의 기미도 없다. 남에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미국. 자기 눈의 들보부터 뽑고 남의 눈의 티를 빼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3LegsCrow::하늘날다 두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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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19. 18:39

지도로보는 통일한국 패권 Damul Korea2011. 8. 19. 18:39

지도로 보는 미국의 패권구상 - 통일한국과 2012년 대격변

다시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어 올려드리오니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지도로 보는 미국의 패권구상 - 동북아시아의 새로운강자 통일한국

출처:디씨역사갤러리 (2007년제작)

아직 못보신분이 계실까 하여 다시 올립니다.

그림1

이하 디씨역갤인용시작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들어서고, 네오콘의 세계전략이 구체화되었을때에

왜 그 첫번째 침공대상이 아프가니스탄이었는가?

그림2

그것이 이라크라던지 또는 북한일 가능성은 없었을까?

이런 생각한번쯤 해보셨을겁니다.

그림3

작금의 동북아시아정세 (미-중간의 대립)을 보면서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벌여오고있는 패권구상을 지도로 확인해볼수가있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말보다는 지도한장이

더 쉽게 부시행정부의 패권전략을 이해하게도 해줍니다.

아래 그림이 좀 불친절하긴해도, 원으로 되어있는 부분을 보면서 설명을 드리죠.

가운데에 있는 큰원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입니다.

보라색으로 되어있는 부분이죠.

1.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을 첫번째 목표로 삼았나?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위치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보신분들은 많지 않을겁니다.

그런데 잘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는것을 발견하게됩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란과 중국을 곧바로 연결하는 중앙에 위치하고있습니다.

그림4

또 다르게 말한다면 중동과 중국을 직접연결하는 연결통로이기도 하지요.

중국이 중동으로부터 원유공급파이프라인을 계획했던 주요루트가

바로 아프가니스탄을 경유하는것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지도를 조금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오른쪽으로 길죽하게된 지형이 바로 중국으로 연결할수있는 통로지요.

그림5

아울러 아프가니스탄의 다음으로 미국의 침공을 받은곳은 이라크입니다.

이라크를 살펴보면 더 재미있어집니다.

바로 이라크는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이란과 접경한 국가이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미국이 점령하게되면

이란은 그 사이에 샌드위치가 됩니다.

그림4지도의 오른편에 있는 두개의 원은

말할필요도없이 한반도와 대만입니다.

네개의 원의 공통점은 미군이 직접적으로 힘을 투사하고있는 곳입니다.

한반도와 대만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을 연결하는 삼각구도는

중국을 둘러싸게됩니다.

마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의해서 샌드위치가된 이란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중국과 이란을 고립시키려고했을까요?

지난번에도 제가 말씀드렸듯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이유는

세계2위의 석유생산국가인 이라크의 석유공급을 확보하고

중동의 석유패권을 손에 넣기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연결해서 보면 그 이유가 더욱 확연해집니다.

중국과 이란의 연결고리를 끊고,

양국을 고립화시키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첫번째 초석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는것이라는 얘깁니다.

알카에다가 일으킨 9.11때문에 우연하게 불똥을 맞은것이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두번째 불똥을 반드시 이라크가 맞아야할이유는 하나도없었습니다.

핵무기나 생물학무기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그림6

2. 중국을 압박하는 3각포인트

다시한번이야기하지만, 미국이 진행하고있는 침략전쟁의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진행이되고있다고 봐야 옳을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타겟이 무었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중국입니다.

이란은 부시행정부의 최종목표가 아닙니다.

아무리 미국이 힘이좋다고 하더라도 8년내에

아프가니스탄-이라크-이란-북한-중국과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만한 능력은 없을것입니다.

그림7

지금 미국이 하고있는 행동은 소위 '곁가지를 치고있는' 것입니다.

진짜 메이저인 중국을 치기위해서

그 중국과 동맹하여 미국에 대항할가능성이있는 모든 국가들을 단속하고

포위전략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것이라고 봐야한다는 겁니다.

그림8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점령으로

이란은 적어도 미-중간의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중동에서 무슨일을 벌일만한 입지를 잃었습니다.

미국은 이란을 치지 않을것입니다. 그림 4 지도가 말해주고있으니까요.

중국을 포위하는 삼각포인트, 그 꼭지점중에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이고

미-중간에 분쟁이 발생하면

미국의 군사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중국의 서쪽으로 힘을 투사하게 될것입니다.

아니 직접적인 힘의 투사가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입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와는 달리,

미국은 중국과 전면전을 치를 계획은 없을겁니다.

핵을 보유한 중국을 직접친다는것은 너무나 위험한 계획이니까요.

그렇다면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미국이 소련연방을 분할시켰듯이 중국을 분할시키는 방법을 택하는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미국의 국무장관인 라이스의 주특기이기도 하죠.

소련의 붕괴를 통해서 능력을 인정받은 러시아전문가가 바로 라이스이니까 말입니다.

그림9

미국은 중국내의 갈등을 최대한 이용해서

간접적인 무력투사를 하는 방법으로 중국을 쓰러뜨리려고 하는것이죠.

아프가니스탄은 중국의 신장자치구, 티베트쪽에 맞물려있습니다.

중국내부의 최대약점중의 한곳이죠.

그림10

지금 미국이 그려놓은 중국을 둘러싼 세곳의 포인트에서 동시에 압력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신장자치구와 티벳의 독립움직임,

그림11

한반도에서의 만주갈등 ,

대만과의 분쟁을 동시에 유발하는것을 쉽게 연상할수가있습니다.

그림12

그것은 마치 한국전쟁때 중국이 참전함으로써 대만을 잃었던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입니다.

어느한가지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지도에서 설명이 빠진부분이있는데, 그것은 동남아시아이죠.

미국은 최근 인도와 베트남과 관계를 밀접하게 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역시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의 일환입니다.

그림13

그런데 미얀마(버마)가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이래

친중국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중국의 뱅갈만으로의 소통에 숨통을 틔여주고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미얀마를 불량국가 명단에 올려놓고있고

미얀마의 군부는 미국의 공격이 두려워서 지휘부를 산악으로 옮기려고 한다는 외신도있습니다.

인도,베트남의 움직임은

직접적인 미국의 군사력투사와는 큰연관이없지만

중국포위전략의 일환인것은 맞습니다.

미국이 대만을 부추겨서 중국과 분쟁이 발생했을경우

중국이 미국에 핵을 사용할수있을까요? 대답은 노우입니다.

해군과 공군은 몰라도 미국은 육군을 중국과의 분쟁에 투입하지 않을것입니다.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위해서 말입니다.

과거 한국전쟁때 러시아가 북한의 배후에서 막대한 공군력을 지원했듯이 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형태의 분쟁에서

중국이 직접적인 핵보복공격을 감행할수없다는것입니다.

물론 최근에 중국의 군강경파 장성하나가 미국에 경고를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곧바로 중국의 전략변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만과 중국이 분쟁에 돌입하게되었을때

미국은 대만을 일본과함께 해,공군력으로 지원할것입니다.

중국의 보병병력이 160만에 달하는반면에 해병대의 병력은 1만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대만의 해병대병력은 3만명에 달하지요. 총보병병력은 24만명수준입니다.
이러한 상륙전병력의 불균형이 말해주는것은

대만과 중국의 분쟁시에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걱정을 하는것보다는

오히려 대만의 해병대가 미국과 일본의 도움을 받아

중국대륙에 교두보를 확보하는것을 우려해야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대만의 전총통이었던 이등휘가 언젠가 언론에

진실은 미국이 48대의 핵잠으로 대만해협을 항시 지키고있다면서

중국은 겨우 미사일로 대만을 공격할수있을뿐이니 겁먹지말라고 했던말을 기억합니다.

그림14

3. 통일한반도를 만드는 키워드 (적의 적은 친구)

여기에 맞물려서 동북아의 한반도는 어떻습니까?

미국의 입장에서보면 북한을 빨리 정리해서

미-중간의 분쟁에 한반도에 주둔하고있는 미군의 병력을 동원하려고했을까요?

그렇다면 아마 미육군병력은 철수는 커녕, 증강을 했을 겁니다.

그들이 해군과 공군력만을 증강하고

육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려고하는 이유는

위에서도 설명드렸듯이

미-중간의 분쟁은 철저하게 대리전으로 치뤄질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림15

그렇다면 미국이 기대했던 지상군은 어디있을까요?

원래는 남한의 60만 육군을 그 기동대로 삼으려고했던것이 자명하다는 것입니다.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쥐고있는 상황에서 대만분쟁이 발생한다면

미국은 어떠한 핑계로든 한국군을 중국과의 분쟁에 끌어들이려고했을겁니다.

그림16

그런데 참여정부에 와서 문제가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1

미국의 전략적유연성 (까놓고 말하면 중국과의 패권전쟁)을

참여정부는 절대로 용인할수없다고 버티고나왔던겁니다.

사진2


아울러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일본의 꼬붕이 되기를 거부하고

한-일관계는 동맹관계가 아니다라는 선까지 나아가버렸으니

미국으로서는 난처한 지경이 된 셈입니다.

사진3

최근의 남-북관계 개선, 이과정에서 보여준 북한의 제스춰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북한은 분명히 여러차례에 걸쳐서 '미국과 우방이되고싶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그냥 립서비스로 보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이말은 정말 엄청난 의미를 담고있는 것입니다.

저는 북한의 외교파트만은 정말 스마트하다고 인정하고있습니다.

북한만큼 미국의 전략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있는 국가는 별로 없는것같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말하는 우방의 의미는 사실은 용병입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일전에 클린턴행정부시절에

북한과의 협상을 주도했던 미국의 관리가

TV에 나와서 한말중에 인상깊은 발언이있었는데

북한은 계속해서 중국과 자신들의 관계가 가깝지 않다는것을 강조했다는 겁니다.

즉, 미국의 전략을 백퍼센트 이해하고

이 상황에서 오랫동안의 숙적이었던 미국과 화해하고

오히려 미국을 도울수있다하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지요.

미국으로서는 이세상에서 제일 얄미운 북한을

친구로 받아들인다는것이 어처구니 없는 일일수도있지만,

우방이되고싶다는 말속에 담겨있는 의미까지 눈치채지 못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결론은, 한반도를 참여정부의 구상대로 연합(연방)통일시켜도

남한의 육군대신 북한이 그 역할을 맡아준다면 별문제가 없지않느냐하는겁니다.

아울러 2만5천의 해병대와 LPX등으로 상륙전능력에 박차를 가하고있는 남한을

대 중국분쟁에 끌어들일수있는 방법은

동북3성이라는 당근이외에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림17


위의 지도를 보면

내몽골자치주를 보라색의 선으로 표시해놨습니다.

몽골은 러시아의 일원이고 내몽골자치주는 중국의 영토입니다.

그 둘을 합쳐서 보면 얼마나 넓은 영토인지 가늠하실수있을 겁니다.

그림18

4. 러시아의 협력, 미국의 동의하에 가능한 한국의 동북공정

몽골이 남한에 친근한 정책을 써오고있는것은 대부분 알고계실겁니다.

그 절대적인 이유는 경제적인 협력도 있지만

바로 몽골의 독립과 옛영토의 회복가능성때문입니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줄수있는 세력은

통일 한반도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림19

언젠가 통일한반도는 중국과 간도문제로 영토분쟁이 반드시 일어날것이고

이러한 분쟁의 기회를 몽골은 놓치지 않으려고하는것이지요.

몽골이 내몽골자치구를 흡수할경우

그림17에서 A라는 지역을 한번 주의깊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대략 200km정도되는 직선의 좁은 구역입니다.

저구역을 장악할경우 중국의 동북삼성은 고립무원이 됩니다.

그영토를 한번 다시 보십시오.

옛 고구려의 전성기에 맞먹는 그림이 나옵니다.

물론 통일한반도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림20 광개토대왕-장수왕 때 고구려 영토 지도(말갈,선비,흉노,묘족,부여 모두 우리와 같은 민족입니다)

이러한 그림에 대한 동의가 필요할텐데, 러시아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의 러시아방문이후에 러시아와 한국은 매우 밀접한 관계로 발전하였고,

최근에 러시아는 동북아에있어서 한국을 최우선외교국가로 지정하였고

반면에 일본은 빼버렸습니다.

그림21

다시말해서 한국의 말은 들어주되, 일본의 말은 들어주지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이 원했던대로

시베리아석유파이프라인을 하얼삔을 거쳐서 한국으로 공급하는 안을

7월초에 푸틴대통령이 확정발표한것입니다.

그림22

( 하얼빈경유노선은 연해주경로로 대체되었씁니다-옮긴이)

문제는 미국인데,

과연 미국이 통일한반도 나아가 만주지역의 패권까지 한국에 넘겨주려할까,

또는 그 구상을 지지해줄까하는것입니다.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그림이 필요합니다.

그림23


문화일보의 2005년1월5일자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보하이만(발해만)지역에서

205억톤의 원유가 매장되어있다는것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매장량이고

가채량은 1/3수준인 70~80억톤으로 잡는다면

대략 중국이 30년은 소비할수있는 정도의 량입니다.(보도기사에는 80년)

중국이 매년 소비하는 석유의 량이 2억5천만톤(18억배럴)정도 되므로

이 발해만 유전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수있는 것이지요.

최근의 중국해양석유(CNOOK)가

미국의 석유메이저중의 하나인 '유노칼'을 인수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 발해만유전을 개발할 기술,장비,인력을 확보하기위함이라는 추측을 개인적으로 하고있습니다.

그림23-1 대조영이 이끌던 고구려유민과 우리형제 말갈족이 함께 세운 발해 영역

혹자들은 중국이 미국의 유노칼을 인수하는 이유가

충분한원유공급의 확보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유노칼이 가지고있는 대부분의 지분은

미얀마,인도네시아,베트남등에 산재한 유전과 천연가스등이며 (70%)

이중에서도 다시 1/3만이 석유입니다.

이들 지분은 2030년정도까지 장기공급계약이 이미 끝나있는 상황이므로

이 지분이 중국으로 공급될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야겠지요.

미국의 금융가에서 지적하듯이

중국으로서는 대외적인 협상력과 기술력을 확보하려는 이유가 가장 클것이라고 봅니다.

거기 덧붙여서 바로 발해만유전의 개발이 맞물려있다는것입니다.

문제는 이유정이 북한의 서한만까지 이어져있다는 것이지요.

최근에 나온 외신기사를 보면

북한의 석유탐사를 위해서 방북하였다는 이야기가 많이나오고

이들 유정이 발해만유정에서 이어져나온것이라는 기사도 간간히 흘러나옵니다.

위의 지도에서 보여지는 B선이 바로 중국-북한간의 국경인데

북한의 유전개발이 활발하게 진척되고있는곳은

해안에서 150km, 중국과의 국경에서 30km정도 떨어진 해상이라고 합니다.

만주의 간도문제와 맞물려서

이것은 통일한국이 훗날 중국과 엄청난 분쟁을 야기할수있는 문제가 될것입니다.

두번째 지도에 나왔던 A라인의 확보는

발해만 유전을 모두 한반도에 귀속시키는 결과도 가져올수가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이 패권국가로 커나가는것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을것이고,

자신들이 중국을 견제할수있는 한계를

이번 국방부의 보고서에는 10년으로 잡고있습니다.

그 10년안에 어떤형태로든지 미국은 결정을 내려야합니다.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유일한 세계의 경찰의 지위를 나누던지,

아니면 중국을 견제하는 조치를 취하던지 하는 결정을 말입니다.

미국은 이미 중국을 견제하기로 마음먹었고

부시행정부에서 취해온 테러와의 전쟁은

결국 패권국가로 발전하려는 중국을 견제하는 포석임을 이해할수가 있을것입니다.

중국이 분열되고 쪼개지더라도 발해만의 대규모 유전같은것을 보유하고있다면

미국의 전략은 실패로 돌아갈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일한반도가 이뻐서가 아니라,

미국의 패권전략에 의해서 이 지역의 지배권은

통일한국에 넘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겐 꿈처럼 보일지 몰라도 ,

미국과 중국에겐 코앞에 닥친 패권전쟁의 현실이며

1천5백년전의 고구려의 꿈은 우리당대에 이뤄질지도 모릅니다.

이런 그림들은 참여정부가 말했던

동북아중심국가가 현실화될수도있음을 말해주며,

노파심에서 덧붙여 설명한다면

우리가 중국과 전면전을 펼치는 일은 아마도 없을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의 주된전선은 대만이며

통일한반도는 중국의 힘이 약화되고 쪼개어질때 까지

중립을 지키면서 어부지리를 챙길수있는 힘만 가지고있으면 된다는 것이지요.

그 힘이 바로 통일한반도입니다.

그림24

이상 디씨역갤 인용끝.

위글중 일부사진은 이해를 돕기위해 본인이 첨부하였습니다.

이하 느티나무집 본문시작

위글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이 그루지야를 선동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얼마전 러시아를 침략군으로 묘사하는 언플을 한참했던 그루지야사태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림25

그림26

이전쟁은

미국이 그루지야를 선동하여 러시아를 끌어들인 전략이죠

그림27

잽도 안되는 그루지야가 미국의 지원없이 어떻게 러시아를 건드리겠습니까?

그림28

다음지도를 보시면 러시아를 포위하는데

그루지야와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지 아실겁니다.

그림29

그림30

위그림에서 보듯 미국은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터키에 주둔함으로써

러시아와 이란을 단절시키고 고립시키는데 성공하고 있지요

그림31

역갤글 본문에서 보시다시피 미국의 정책은

한반도 통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이이제이정책이 주골조입니다.

그림32

견제도 하고 무기도 팔고

님도보고 뽕도 따는 정책이랄까요?

그림33

여태까지는 남북긴장을 조성하여

남한에 많은 무기를 팔아먹고 덩달아 니뽄에도 팔아먹는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남한국방비가 북한국방비의 400백배나 되는 현실에서 더이상 통하는 카드가 아니죠

그림34

결국 중꿔카드로 니뽄과 타이완에만 무기를 팔아먹어서는 타산이 안맞기에

남북을 통일시켜 중꿔와 경쟁시키고

덩달아 불안해지는 니뽄에도 더욱 많이 팔아먹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림35

전시작전통제권도 노통의 업적이기도 하지만

미국프리메이슨방산자본의 책략이기도 합니다.

그림36

한국이 여차하면 일본과 한판뜰수도 있어야

불안한 일본이 무기를 사재기할테니까요

지금은 한국이 일본과 한판 붙고 싶어도 그럴수가 없죠

작전권이 없으니까요.우리의 군사주권은 미군이 들고 있지요...

한미연합사령관의 결재가 없으면 전쟁도 맘대로 못하는게 지금 한국입니다.

우리영해인 독도해역에 일본군함이 와서 설쳐도 언플만 하는 이유지요..

그림37

2012년 정말 볼만한 시대가 될겁니다.

대충 한번 2012년을 훑어 볼까요?

먼저 2012년12월 21일에 마야달력 13번째 백툰(backtun)이 종료한답니다...꺼림칙하죠?ㅋㅋㅋ^^

요즘 이거때문에 2012년 종말설로 분분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성경예언을 근거로 살펴보면 그날 지구종말은 절대 오지않는다에 한표 던집니다.^^

그림38

2012년 4월14일은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인데...미국의 패권이 끝나는 날일까요?

뭐 아메리카가 없어진다고 해도 더큰규모의 북미연합이 탄생하니까...별의미는 없을듯..

설사 북미연합도 천재지변을 만난다하더라도

나토 즉 유럽연합역시 중꿔를 견제해야 하기는 마찬가지 입장이니까

한국이 걱정할 일은 아닐듯..

그림39

2012년 4월 11일 국회의원선거...딴날당 참패..이메가 탄핵..대통령보궐선거..

세종시수정안폐기후 행정수도법통과로 입법,사법,행정 3권 모두 세종시및 대전시로 이전하여

조선시대 한양수도시대는 막을 내리고

2012년 4월17일 한미연합사는 해체되고

남한은 전시작전통제권 이양받아 명백한 군사주권국가가 되고 ..

2012년 FTA,WTO완전개방으로 방송,통신,금융,의료,제약,법률,농업,유통등 모든 시장 대혼란.

신자유주의 무제한침공개시

참고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23931

2012년 12월31일부로 1119개의 모든 아날로그방송은 종료하고 디지털 TV방송


딴나라떨거지들은 니뽄과 아메리카로 도주할거고

몽이는 정경유착의 댓가로 콩밥좀 먹을거고..

횬중주가 대폭락할거고..

누가될지...다음대통령은

남북통일과 다극화시대에 정신없는 5년을 보낼듯하네요

그림40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2012년 전세계 휴대폰충전기가 통일된다네요^^ㅎㅎ좋은 소식..

그리고 2012년 3월 유대인이 아닌 KGB출신 푸틴이 러시아대통령선거에 출마를 하죠..

말이 출마지..걍 취임하는겁니다 ㅎㅎㅎ.푸틴이 집권하면 러시아가 거의 짜르시대로 돌아갈듯..

러시아 아랍연합군이 이스라엘로 침공하는다는 성경예언대로 되어가는 모습이네요..

그림41

2012년 7월27일 3s정책의 총화인 올림픽 제 30회가 런던에서 열리고

2012년 9 ~10월 중국 18대 공산당전당대회가 열려서 후진타오 후임을 뽑지요

2012년 11월에는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고...뭐 개인적으로 오바마가 마지막 이라고 보지만 ㅎㅎㅎ

저는 북미연합이 오바마 임기중에 일어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2년 6월 제2대 유럽연합대통령은

임기3년6개월에 중임가능제로 EU헌법을 개정하여

적그리스도 7년통치를 준비할테고

(요건 제개인적인 생각이고요 현재 분석중인데 좀더 늦춰질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예언된 솔로몬성전문제와 종교통합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때문에 아직 좀 이르다는 생각입니다.^^)

2012년 정말 정신 없죠?^^

초강대국 대부분이 후임자를 뽑게 되고 경제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게 되는데...

아마 상상 그이상을 보게 되실겁니다...

성경에는 남북이 통일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날이 가깝다고 했는데...

남북이 통일될때 적그리스도도 나타난다고 하였죠...

리스본조약이 2009년12월1일부로 개시되었으니

제3대유럽연합통령이 2014년11월29일 취임하면 [설날]이...설날이 될듯...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간은...

그동안 교회 마당만 밟으며 갖은 행악을 일삼던 거짓 기독교인들이

개피를 보는 시원한 기간이 되겠네요

그런 노래가 생각나네요..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까치들 짖고 있을때 설날이 낼모레라는거..좀 알아 주셨으면...

그림42

여튼 한국이 통일되어 몽고르형제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신장위구르형제들이 독립투쟁을 가속하면

중꿔가 지금같은 영화를 누리기는 힘들죠...ㅎㅎㅎ

그림43

네팔소녀 루빠

거기다 중꿔 남서부에 네팔부탄등등은 혼혈이 좀 진행된곳도 있지만

모두 우리와 유전자 완전 동일한 형제들 아닙니까

그림44

저같으면 중꿔에 애들 유학보내서 중국어 열풍 일으키기 전에

몽고르로 날라가겠씁니다.ㅎㅎㅎ중꿔에 몰빵한 미x에셋..참 불쌍해지네요...(관련자님들죄송)

그림45

네팔소년 순버하둘

오늘 나오는 미군철수 언플은 사실 이메가정부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긴 경고라기보다는 이제 작업종료하고 미국으로 토낄준비를 하라는 사이렌이라고나 할까요?

이미 오래전 노통때 확정되었던 당연한 미군재배치를 생뚱맞게 언플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계속 엉뚱한 옆차기를 하고 있는 이메가 모리배들에게 미국이 직접 경고한 것이죠

남북긴장모드는 그동안 미방산자본과 함께

한국의 군부독재정권과 친일파들이 유용하게 써먹어왔으나

이제 대세는 남북통일입니다.

친일파수구보수세력들은 전작권이양을 최대한 늦춰서 득을 보려 하겠지만

지금 다급한 것은 오히려 미국이지요.

미국이 이미 십년전에 완료된 계획을 더 서두르고 있는 것은

중국의 경제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단하루도 전작권이양을 늦출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림46

이 상황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친일파들은

앞으로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땅에서 매장될 것입니다.

조만간 오사카부동산경기가 살아날듯..ㅎㅎㅎ

남한에서 탈출하는 친일파들때문에 ㅋㅋㅋㅋ

끝으로 노무현대통령과 현총독의 집무실을 비교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그림47

노무현 집무실.보이십니까 전략전술무기 프라모델들...

그림48

ㅎㅎㅎ 깨끗하시군요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기뻐하십시요

드디어 때가 다가오고 있씁니다.

이상 느티나무집 까치 올림

OTL

http://www.cyworld.com/2LS

출처: http://blog.daum.net/kimuks/7529550


다른버전:

지도로 보는 미국의 패권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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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지 정벌 루트


고선지 (高仙芝 ; ?~755)
고구려 출신의 당(唐)나라 장수로서 고구려가 망하자 당나라 사진교장(四鎭校將)이었던 아버지 사계(舍鷄)를 따라 당나라 안서(安西)에 갔다. 그를 고구려인으로 보는 자료로는 《구당서》, 《신당서》와
《자치통감》 등이 있다. 《구당서》와 《신당서》 고선지전에는 그를 명확히 고구려인이라 하였고, 또 《구당서》와 《자치통감》에는 선임 안서절도사 부몽영찰(夫蒙靈?)이 고선지가 세운 전공을 시기한 나머지 ‘개똥 같은 고구려놈’이라고 한 욕설에서도 알 수 있다. 호삼성(胡三省)이 《원화성찬 元和姓纂》에 의한 주(注)를 단 것을 보면, ‘부몽(夫蒙)’이라는 성(姓)은 본래 서강인(西羌人)이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중국에 동화된 이민족 사이에는 상대방을 욕할 때 종족적 멸시를 호칭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한 예가 호장(胡將) 안녹산(安祿山)가서한(哥舒翰) 사이에서도 보이는데, 그 기준은 한화(漢化)를 잣대로 하여 상대방을 업신여기고 있다.

음보(蔭補)로 유격장군(遊擊將軍)에 등용되고, 20세 때 장군(將軍)에 올랐으며, 안서 절도사(安西節度使) 부몽영찰(夫蒙靈樽)의 신임을 얻어 언기진수사(焉耆鎭守使)가 되었고, 740년경 병력 2,000명을 데리고 톈산산맥[天山山脈] 서쪽의 달해부(達奚部)를 정벌한 공으로 안서 부도호(安西副都護)에 승진하고, 이어 사진도지병마사(四鎭都知兵馬使)에 올랐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747년 소발률국(小勃律國)을 원정하고 돌아온 뒤부터였다.

즉, 747년 토번(吐蕃: 티벳)과 사라센제국이 동맹을 맺고 서쪽으로 팽창하던 당나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동진하자, 그는 행영절도사(行營節度使)에 발탁되어 토번족의 정벌 임무를 띠고 1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식닉국(五識匿國: 지금의 Shignan지방)을 거쳐 파미르고원을 넘어 토번족의 군사기지인 연운보(連雲堡)를 격파하였다.

그리고 계속 진격하여 험난하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힌두쿠시준령을 넘어서 소발율국의 수도 아노월성(阿弩越城)을 점령하고, 사라센제국과의 유일한 교통로인 교량을 파괴하여 그들의 제휴를 단절하였다. 이 1차원정에서 불름(佛: 동로마), 대식(大食: 아라비아) 제호(諸胡)의 72개국의 항복을 받고 사라센제국의 동진을 저지한 공으로 홍려경어사중승(鴻卿御史中丞)에 오르고 이어 특진 겸 좌금오대장군동정원(特進兼左金吾大將軍同正員)이 되었다. 750년 제2차 원정에 나가 사라센과 동맹을 맺으려는 타슈켄트[石國]를 토벌하고 국왕을 잡아 장안(長安)에 호송한 공로로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가 되었으나, 장안의 문신들이 포로가 된 타슈켄트 국왕을 참살했기 때문에 이듬해 서역 각국과 사라센이 분기하여 연합군을 편성, 탈라스의 대평원으로 쳐들어왔다.

이를 막기 위해 다시 7만의 정벌군을 편성, 제3차 원정에 나갔다가 당나라와 동맹을 가장한 카를루크(葛邏祿, Karluk)가 배후에서 공격을 하여 크게 패하고 후퇴, 귀국 후 밀운군공(密雲郡公)에 봉해졌다. 755년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정토군 부원수로 출전, 선발군으로 나가, 패전한 우군을 구원하기 위해 방어 담당지역을 무단이동한 사실에 대하여, 평소 사원(私怨)을 품고 있던 부관인 감군(監軍) 변영성(邊令誠)이 과장하여 현종에게 밀고(密告)함으로써, 진중에서 참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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